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 헌법재판소가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인터넷 역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판결이지만 걱정이 가장 앞서는 것은 바로 정치권이란 이야기가 있다. 야권 후보가 정해지지 않았고, '장외 스타'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출마 공식화도 아직이지만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네거티브 비방전'은 실명제 울타리 밖에서 어느 때보다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의 발로다. 안철수 교수의 최측근인 금태섭 변호사가 6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선거기획단 정준길 공보위원이 안 교수의 '뇌물과 여자' 의혹을 제기, 불출마하라고 협박했다고 폭로했는데 진실을 떠나 이미 인터넷에서는 네티즌끼리 왈가왈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벌벌 떠는 정치권
일단 악성 댓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좌불안석이다. 후보자에 대한 각종 검증이 흑색선전으로 둔갑해 진실을 떠나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면 그야말로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나경원 1억원 피부과'도 결국 사실 관계가 뒤늦게 밝혀졌지만 나 서울시장 새누리당 후보가 패배한 뒤였다. 대선정국에서 인터넷 실명제의 족쇄가 풀리면서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카카오스토리 등 각종 SNS는 소통창구이지만 네거티브 증폭장으로 변질될 우려가 커졌다. 얼마 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출산설, 성 접대설 등 자신을 두고 나온 이야기에 대해 "저에게 지금 아들이 있다, 30살이고, 어떻고 저렇고… (그런 기사를) RT(리트윗)까지 신나게 하고, 나중에 보니까 (언론에서) 그것이 아니었다고 한 줄로…. 그게 뭐냐, 우리 사회가.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민주당도 다를 바 없다. 겉으로는 실명제 폐지에 적극 공감한다지만 내심은 같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인터넷 실명제 탄생과 헌재 위헌 판결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최초로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 것은 옛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현 공직선거법)이었다. 2005년 8월, 선거운동기간 중 한시적으로 인터넷 실명제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이 한시적 실명제가 지금에 이르렀다. 당시에도 선거판의 묻지 마 비방과 네거티브가 인터넷을 타고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었다. 이후 인터넷상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옮길 경우에는 당사자를 찾아 책임을 물었다.
헌재가 실명제를 위헌이라고 한 것은 정보통신망법의 상시적 실명제다. 게시판 이용자의 익명 표현의 자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언론 자유, 게시판 이용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라는 3가지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입법자가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때 그 정도가 과도해서는 안 된다"며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 판단했는데 특히 건전한 인터넷 문화 조성이라는 실명제의 입법 목적이 다른 수단을 통해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 이후에도 악성 게시글이나 댓글이 의미 있게 감소하지 않았고 ▷표현의 주체나 기간, 내용을 떠나 과도하게 익명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으며 ▷일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실명제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등 위헌 이유를 조목조목 들고 있다.
◆시기상조인가, 자정 노력으로 가능한가
이제 건전한 인터넷 환경은 사업자와 네티즌의 몫이 됐다. 실명제가 위헌이니 개인정보 유출은 숙질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악성 게시글이나 댓글은 날개를 달 수밖에 없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민간 사업자들과 네티즌 스스로가 역기능 방지를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실질적인 인센티브 부여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잘못된 정보의 확대 재생산으로 올바르지 못한 선거를 치르고 대통령을 뽑게 된다면 그것은 전국민적 손해와 망신으로 돌아오게 된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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