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격 인하는 버티면서 고객만 불편한 '셀프의 역설'

다른 가게 대해서 "유행 따라 셀프" 종업원은 손님와도 멀뚱멀뚱

한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제품들을 셀프로 계산하고 있는 주부. 우리 주변에 셀프 서비스가 없는 곳은 찾기 힘들어졌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한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제품들을 셀프로 계산하고 있는 주부. 우리 주변에 셀프 서비스가 없는 곳은 찾기 힘들어졌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물은 셀프' 등 식당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셀프 서비스 관련 문구들.

'물은 셀프(self)'.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식당 벽면에 붙기 시작한 문구다. '셀프 서비스' 바람이 만들어낸 '식당 헌법 제1조'(?)다. 식당 외에도 카페'대형마트'주유소 등 다양한 곳에서 우리는 셀프 서비스를 익숙하게 접하고 있다. 가히 '셀프 전성시대'다.

셀프 서비스의 핵심은 '서비스의 일부를 소비자 스스로 하도록 하고, 그에 상당하는 절약분만큼 가격을 내려 판매하는 것'이다. 아낀 인건비를 소비자에게 '가격 인하'라는 혜택으로 되돌려준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소비자는 자기 취향에 따라 서비스 항목을 고르는 등 'DIY'(Do It Yourself)의 재미도 누린다. 이외에도 소비자는 서비스 이용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드는 등 여러 이점을 얻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셀프 서비스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과도하거나 껍데기뿐인 셀프 서비스에 소비자들이 불편과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살펴봤다.

◆셀프는 '윈윈'(Win-Win)일까?

"물은 셀프입니다. 물론 김치와 단무지 등 반찬도 셀프고요. 다 드신 후 빈 그릇은 선반 위에 올려주세요. 밥먹고 드시는 커피도 셀프인 거 아시죠? 그리고 또…."

셀프 서비스 문화는 식당에 가면 쉽게 접할 수 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음식을 주문해 먹은 다음 계산을 하고 나서기까지 셀프라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붙는다.

알려진 대로라면 셀프 서비스는 '윈윈'(Win-Win)이다. 업주는 인건비 등 서비스 제공 비용을 아끼고, 소비자도 가격을 인하 받는다. 그런데 이 '공식'이 과연 실상에서 왜곡 없이 적용되고 있을까?

사례 1. 대구 동구의 한 동네에는 몇 개의 식당이 모여 있다. 비슷한 음식 메뉴를 팔고, 가격도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A라는 식당은 물과 음식 서빙을 종업원들이 하는 반면 B식당은 손님에게 셀프로 맡긴다. 셀프 서비스의 공식대로라면 B식당의 음식 가격은 A식당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두 곳의 같은 메뉴 음식 가격은 같았다.

사례 2.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식당에는 7명의 종업원이 있다. 식당 내부 크기나 식탁 수에 비하면 다소 많은 인원이다. 그런데 이곳의 물과 반찬은 셀프다. 그래서 손님이 물과 반찬을 가지러 돌아다닐 때 종업원들은 가만히 서서 잡담을 나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무늬만 셀프

위 두 가지 사례는 셀프 서비스의 동기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그저 '형식'으로만 받아들였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례 1의 B식당 주인은 "'물은 셀프'라는 문구를 별 생각 없이 붙였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식당을 돌아다녀봤더니 알록달록하게 색칠을 한 문구를 정수기 위에 붙여놓았더라. 유행인 줄 알고 따라 했다"고 말했다. '물은 셀프입니다'의 뜻을 '식수는 여기 있습니다'정도로 해석했다는 것.

사례 2의 식당 매니저는 "종업원 수가 비교적 많은 것 같다"고 묻자 "종업원을 여러 명 고용해야 손님들에게 장사가 잘 되는 맛집으로 인식될 수 있다"며 "물과 반찬을 서빙 하는 것보다는 손님이 들어오면 큰 소리로 인사하고, 깔끔한 외모로 호감을 주는 것이 우리 가게 종업원의 역할"이라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마케팅 컨설턴트 배운철 씨는 "'손님은 왕'이라는 구호와 '물은 셀프'라는 구호를 동시에 외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셀프 서비스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셀프 서비스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가격 인하는 물론 고객 만족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자영업 경쟁력을 허약하게 만드는 데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셀프와 가격 논란

식당 못지않게 '셀프'가 지배하는 곳이 요즘 급증하고 있는 카페다.

손님은 카운터에 가서 커피나 차 등 음료를 주문한다. 자리로 돌아와 기다린다. 이윽고 지급 받은 '호출기'가 요란하게 신호음을 울리면 다시 카운터로 가서 주문한 음료를 받아 온다. 음료를 다 마신 뒤 그냥 놔두고 나가면 안 된다. 지정된 선반에 컵'빨대'휴지 등을 분리수거해 버린 다음 문을 나서야 한다. 사실 카페는 앞서 살펴본 식당보다 셀프의 강도가 강한 셈이다.

지금껏 소비자들은 "당연히 손님이 셀프로 해야 하는 것들"이라며 카페를 이용했다. 하지만 만만찮은 커피값에 의문을 제기하며 불만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카페는 종업원이 음료를 서빙 한다. 하지만 종업원이 없는 셀프 카페보다 오히려 가격이 저렴한 경우가 많다.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 때 같은 원두 품종을 사용할 경우 상식적으로 가격도 같아야 하고, 원두 품종이 다르더라도 커피값에서 원두값은 '몇 백 원' 수준에 불과해 큰 의미가 없다. 올해 관세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4천원 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의 원두값은 280원이었다. 결국 건물 임대료'판촉비'전기요금 등과 '인건비'가 커피값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값은 같은데 손님이 셀프로 이용해야 하는 카페는 불만스럽다는 얘기다.

직장인 곽 모(29'여) 씨는 "식당과 달리 카페는 휴식을 취하고 대접받기 위해 비싼 커피값을 지불하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카페는 당연히 셀프 서비스로 이용해야 한다'는 인식은 조금 바뀔 필요가 있다"며 "서양과 달리 앉아서 편하게 대접받으려는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셀프 서비스'와 '카페'는 서로 이질적인 개념"이라고 말했다.

셀프 주유소도 종종 가격에 의문이 제기된다. 셀프라고 기름값이 절대적으로 저렴한 것은 아니기 때문. 셀프 주유소는 인근 일반주유소들보다 휘발유값이 쌀 때도 있지만 오히려 비쌀 때도 있다. 확실한 것은 이 셀프 주유소는 같은 브랜드의 일반 주유소들보다는 늘 기름값이 싸다는 것이다. 브랜드마다 산출되는 석유 원가가 다르고, 따라서 셀프주유소의 가격 우위도 같은 브랜드 내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셀프 주유소는 단순히 가격을 낮추려는 의도보다는 브랜드 마케팅 차원에서 출발했다"며 "물가 안정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브랜드 이미지를 알리고, 박리다매로 매출을 높이는 등의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셀프는 불안해?

셀프는 불편과 불만을 넘어 소비자의 안전 문제를 낳기도 한다. 전문숍에서 받던 뷰티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을 들여 집에서 직접 하는 '셀프 뷰티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 십만원하던 속눈썹 연장 시술을 몇 만원하는 제품을 사서 집에서 한다. 그런데 자칫 눈과 주변 피부가 다치거나 속눈썹 탈모 등 부작용을 겪는 경우가 있다는 것. 네일케어도 간단하게 매니큐어를 칠하는 수준을 넘어 집에서 이런저런 복잡한 손'발톱 관리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지만 자칫 무리할 경우 손'발톱 변형이나 세균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셀프 제모도 주의하지 않을 경우 색소침착이나 모낭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셀프로 하지 않고 전문숍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수 십만원 하는 시술을 셀프로는 수 만원에 할 수 있는 매력을 소비자들은 쉽게 뿌리칠 수 없다. 소비자의 주의도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안전한 셀프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셀프 뷰티의 안전 문제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셀프 서비스는 어디에든 마냥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일부 서비스의 경우 셀프로 이용할 경우 극히 위험하거나 아예 금물일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가 관련 지식이 부족해 예측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시 옆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도우미(종업원)가 필요하다는 것.

셀프 서비스는 미국에서 비싼 인건비 문제 때문에 시작됐다. 하지만 이제는 인건비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안전 문제 등 다른 소비자 만족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건비를 줄이겠다며 우후죽순 늘어난 은행 현금입출금기는 대표적인 '셀프 뱅킹' 사례다. 그런데 이곳에서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만일 피해자들에게 '비어 있는' 은행 창구로 가서 직원에게 문의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제공됐다면 피해는 줄어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셀프는 분명 가치 있는 것

셀프 서비스의 본질을 요약하면 '스스로 기능이 수행되게 하다'이다. 그런데 현실 속 셀프 서비스는 그러기엔 아직 불완전하다. 뭔가 '덜커덕'거리는 데도 가게 주인과 소비자 모두 당연하게 '셀프'라는 형식으로 서비스를 주고받는다.

사실 앞서 살펴본 셀프 서비스의 문제점들은 어디까지나 일부의 경우이다. 하지만 앞으로 맞벌이 가정과 독신자 수가 증가하고, 고령화가 빨라지며 홀몸노인도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면서 '개인'과 '저렴함'에 방점이 찍히는 셀프 서비스는 더욱 절실해지고, 또 늘어날 것이다. 점차 손을 봐야 할 문제점들이라는 얘기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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