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누구의 것일까? 또 해례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훔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구속기소됐던 배모(49) 씨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해례본의 운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배 씨의 무죄 선고로 해례본 소유에 대한 셈법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해례본은 누구 것?
배 씨가 비록 무죄를 선고받긴 했지만 해례본의 소유가 인정된 것은 아니다. 언뜻 배 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훔친 게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인정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훔친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소유주라고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재판부는 이날 "해례본이 피고인 소유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분명히 했다. 그런데 현재 해례본은 배 씨가 가지고 있다.
해례본의 소유권은 민사 소송 결과에 따라 골동품업자 조모(67) 씨에게 있다. 조 씨는 해례본을 도난당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가 지난해 대법원으로부터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조 씨는 정작 해례본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게다가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지난 5월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곧 해례본이 세상에 나온다면 국가 소유가 된다는 의미다.
배 씨도 무죄 선고 직후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공개하라'는 재판장의 부탁에 '그렇게 하겠다'고 답한 만큼 공개할 가능성이 적잖아 공개되는 즉시 소유권이 조 씨에게 돌아가고 조 씨는 국가 기증 의사를 밝힌 만큼 국가 소유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배 씨가 해례본을 훔쳤는지 훔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소유권은 조 씨에게 있고 결국 국가로 기증된다'는 것이다.
◆배 씨, 과연 내놓을까?
그런데 문제는 상황이 이러한 데도 배 씨가 선뜻 해례본을 내놓겠느냐는 것이다. 배 씨가 해례본을 공개하는 순간 자신을 도둑으로 몬 조 씨에게 소유권이 돌아가는데 '조 씨만 좋아지는' 해례본 공개에 정말 나설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비공개'로 마음을 돌릴 경우 해례본은 자칫 암흑 속에서 영영 빛을 보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내놓지 않아도 어떠한 법적인 처벌은 받지 않는다.
이상오 대구고법 기획법관은 "이번 판결과 지난해 민사 판결이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은 사건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 절도 여부를 가리는 형사소송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하더라도 소유권을 결정한 지난해 민사 결론이 뒤집히지는 않는다. 민사의 효력이 그대로 유지돼 해례본은 여전히 조 씨의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형사 재판에서 재판부는 조 씨가 해례본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 배 씨가 이를 알고도 훔쳐갔다는 점 등이 명백하게 입증됐다고 보기 어려워 무죄를 선고했다"며 "형사재판에서는 의심스러울 때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in dubio pro reo)는 원칙에 따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선 '줄소송'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배 씨는 형사 소송에서 무죄를 받은 만큼 상고에서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받게 되면 실추된 명예와 소유권을 찾기 위해 소송을 잇따라 제기할 가능성이 적잖다. 배 씨는 재판 과정에서의 증인들의 위증을 앞세워 위증, 무고 및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를 하겠다는 뜻을 비치기도 했다. 검찰 역시 이번 재판에서 진 것은 재판 과정에서 증인들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라며 직권으로 조사해 기소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위증, 무고, 명예훼손이 인정돼 승소하면 이를 근거로 대법원에 민사소송 재심을 신청해 소유권을 되찾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증인들의 무고와 위증으로 민사소송에서 진 만큼 다시 판결을 의뢰, 소유권을 되찾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대법원에 민사 재심을 신청한다 하더라도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사소송 과정에서 변론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아 패소한 배 씨의 책임을 물어 재심 신청조차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사 재심이 받아들여지고 또 승소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배 씨가 '자신의 명예와 해례본 소유권을 되찾은 뒤'라는 전제를 깔면 해례본이 세상에 나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줄소송 과정이 10년 넘게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