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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인물] 조선 패망 생생 기록 남긴 열사 황현

"임금은 날마다 유흥을 일삼아 매일 밤 연희를 열고 질탕하게 놀아 광대 무당과 악공들이 어울려 노래하고 연주하느라 궁정 뜰에 등촉이 대낮과 같았다. 과거도 유희의 한가지로 생각하여 어느 달이고 과거를 치르지 않은 때가 없었다."

부정과 비리로 망국을 향해가던 시절,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고종을 매섭게 비판했다. 패망이 일제 침략뿐만 아니라 왕조, 세도가, 외척의 횡포 부패 때문임을 기록으로 남겼다. 1855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맞자 그해 오늘 목숨을 끊었다. 왕조 몰락의 생생한 증언이 그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이다. 그는 벼슬 대신 낙향해 학교를 세워 후진 양성에 힘쓴 개화기의 대표적인 열사였다. 순국 직전 4편의 절명시 등을 남긴 시인이자 역사가였다.

매천야록은 세상에 늦게 선보였다. 죽음 직전 자손에게 책을 남에게 보이지 말라고 했던 탓이다. 그러나 후손은 원본 유실이나 훼손에 대비, 부본을 몇 부 만들어 한 부를 중국에 망명 중이던 학자 김택영에게 보내 교정을 요청했고, 김택영이 중국인에게 한국 역사를 알리려 쓴 책 '한사경'에 매천야록을 인용하면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땐 극비로 취급됐고 그의 탄생 100년이 된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에 의해 발간, 널리 퍼졌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면서 그의 공훈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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