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나라 시조 조조(曹操)가 죽고 난 뒤, 맏아들 조비(曹丕)가 평소 사이가 나빴던 동생을 죽이려고 칠보시(七步 詩)를 짓게 했다. 일곱 발자국을 걸을 사이에 시 한 수를 못 지으면 목을 친다는 칠보시. 동생 조식은 '자두연기'(煮豆燃箕)란 시를 짓고 살아났다. '콩을 삶으려고 콩깍지를 태운다'는 뜻이다. '다 같은 뿌리(부모)에서 자란 사이인데 어찌하여 함께 나랏일을 도모해야 할 형제끼리 괴롭히려 드는가'라는 애절함을 읊었다.
안철수 교수의 뇌물, 여자 문제 의혹 제기 전화 통화를 놓고 '너는 내 친구다'는 주장과 '네가 왜 내 친구냐'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정치 논쟁을 보며 조조 아들들의 콩깍지 칠보시를 떠올려 봤다.
스캔들 전화 시비의 앞뒤부터 살펴보자. 논란의 핵심은 '친구'라는 사람이 '친구 아니란' 사람에게 전화 한 통 한 것이 정치적 협박이냐 아니냐는 게 초점이다. 전화를 했다는 사람은 새누리당 공보위원이라는 정준길 씨고 전화를 받았다는 사람은 안철수 교수의 측근 변호사라는 금태섭 씨다. 두 사람이 친구냐 아니냐에 따라 '친구 전화를 정치 음모에 악용한 정치 공작'으로 몰릴 수도 있고 반대로 친구를 통해 정치적 협박을 한 정치 사찰로 몰릴 수 있다. 두 사람을 친구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쌍방의 도덕성이 심판받는 상황이 돼 있는 것이다.
앞뒤 정황을 되짚어 보면 이렇다. 먼저 협박 기자회견을 열고 협박이라고 주장한 안철수 교수 측 금 변호사는 '평소 연락이 없다가 최근에 문자 한 통이 오고 관련된 전화(안철수 의혹 관련) 한 통 더 온 게 전부다'고 했다. 가까운 친구는 아니란 얘기다. 반대로 새누리당 정 씨는 금 변호사에게 보냈던 통화 내용과 금 씨의 답신 문자를 공개하며 반박했다.
'태섭아, (변호사) 수고 많지? 산업은행 관련 안철수연구소 부분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정이 있다. 참고하기 바래' 오후 10시에 정 씨가 보낸 문자 메시지다. 세 시간 후 오전 1시 변호사 금 씨는 답신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사정이 뭐니. 준길아?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전화 줘…'
정 씨는 금 씨가 보낸 편지도 공개했다. '내가 동기회장 맡을 당시 네가 운영위원이었고 2009년 네 저서에 서명해서 나에게 선물도 하지 않았느냐'는 서신이다. 대학 동기요. 새벽에 이름 부르면서 반말 문자 보내고 편지 부칠 정도면 친구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런데도 기자회견까지 열어 안철수 교수의 불출마를 종용 협박했다고 우기는 건 친구와의 전화 내용을 정치 공작에 악용한 거라는 반박이다.
조조의 두 아들이 한 부모 밑에서 자란 콩과 콩깍지라면 S대 법대에서 같은 스승들 밑에서 학문을 닦은 금 씨와 정 씨 역시 군사부일체라는 도덕적 관점으로 본다면 콩과 콩깍지 사이나 다름없다. 가슴에 한 가닥이라도 인간다운 감성이 남아있다면 생각해 보라. 친구란 단어가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를…. 남미나 멕시코 같은 데선. '이 사람, 내 아미고(amigo=친구)야' 한마디만 던지면 생면부지 사람도 무조건 아미고의 아미고에게 손 내밀고 진심을 보여준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친구의 말꼬투리를 고발해서 파렴치한 협박범으로 몰리게 하는 짓은 아미고 사회에서는 상상도 못 한다. 친구가 아닌 정치적 적이라 해도 '네가 따르는 지도자에게 네가 모르는 이런 이런 문제가 있더라. 참고하기 바란다'는 조언이 정치 협박이 되느냐 아니냐는 논란은 애초부터 시시한 시비였다. 두 사람을 친구로 볼 것이냐 아니냐는 심판도 정치 공학적 말재간이 아니라 국민의 평범한 감성이 내린다. 국민이 둘 사이를 친구로 봐주면 안철수 교수 측 변호사가 친구를 삶고 괴롭히는 콩깍지가 되고 친구 아닌 정치적 적대자로 보면 의혹을 제기한 새누리당 측 정씨가 나쁜 콩깍지가 되는 거다. 하기야 더 못난 콩깍지들도 도처에 널렸다. 같은 당 안에서도 서로 삶고 태우고, 친노'비노 갈라치며 한 뿌리였던 옛 동지를 물어뜯는 일부 대선 주자들, 참 못난 콩깍지들이다.
오늘 본란의 논지는 두 친구(?)의 시비를 가리자는 게 아니다. 가뜩이나 각박해져 가는 이 사회에서 친구라는 아름다운 이름마저 정치 마당에 내동댕이쳐져 더럽혀지는 게 안타깝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오늘 밤에도 포장집, 소줏집에서는 수많은 의리 있고 순수한 '보통 친구'들의 술잔이 부딪칠 것이다. 거기에서나마 우리의 작은 희망을 찾자.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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