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문득, 풀벌레들이 울어 가을입니다. 계절의 경계를 넘어 쳐들어온 이 가을의 첨병들은 몸을 숨긴 채 곳곳에다 울음의 실타래를 풀어놓습니다. 낭자한 울음으로 초록의 관습을 허물고 폭염의 잔해를 쓰러뜨립니다. 현관으로, 식탁으로, 안방으로, 침대 위로, 책 속의 행간으로까지 마구 뛰어들어 생각의 자갈길로 이끕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일상에 대해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느냐고 묻고 또 묻습니다. 자정의 들판 끝으로 행군해가며 쉰 목소리로 먼먼 별에다 문자를 보냅니다. "너'는'어'디'쯤'서'울'고'있'느'냐'울'다'가'지'쳐'잠'들'었'느'냐."

김기택 시인의 시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을 읽어 봅니다.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후략)

'텔레비전을 끄자'라는 언설로 이 시는 시작됩니다. 시의 나머지 뒷부분은 모두 텔레비전을 끄고 나서야 가능한 상상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네 일상에서 텔레비전은 굉장한 폭군이지요.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예능과 결합되면서 이 독재자는 우리가 한눈파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습니다. 연속극 여주인공의 눈물에 발목이 빠져 허둥대게 하고, 낄낄거리며 보다가 돌아서면 또 말려들었다고 후회하게 되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으로 얼을 빼놓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연예 오락을 주도하는 대중매체로서 이 텔레비전의 소통방식에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중앙 집중적이며 일방통행식이라는 거지요. 대중으로 하여금 한곳으로 끌리고, 쏠리고, 들끓고, 소용돌이치게 하는 마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도둑들'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관람료 8천원을 도둑맞았다는 기분이 들어도 모두가 재미있다고 떠들어대니 감히 그 푸념을 어디서도 내뱉지 못합니다.

요즘 한류열풍의 기세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케이팝이 세계 젊은이들의 입술과 몸짓을 점령하고, 우리나라의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이 곳곳으로 수출되어 인기리에 방영된다고 하지요. 최근에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말춤을 앞장세워 전 지구를 초토화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오락 최강국의 역량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지만, 그리고 그 빛나는 성취를 범국가적으로 기뻐할 일인지도 모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극소수가 절대다수에게 퍼부어대는 이 오락 위주의 소통 질서가 우리 사회 내의 불통의 원흉은 아닌지 따져볼 여지는 없을까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인간과 문명의 시끄러운 소리를, 너무나 가볍고 천박한 소음을 쏟아내는 텔레비전을 끄고, 시인은 어둠에 눈멀었던 눈으로 어둠을 바라보고, 그 어둠을 배경으로 하늘에서 돋는 별을 찾습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푸근한 어둠과 풀벌레 소리에 온몸을 엽니다. 어둠 속에서 들어 더욱 환한, 별빛이 묻어서 더욱 낭랑한 벌레 소리입니다. 시인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큰 울음 사이에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를 찾아 각별히 마음을 쏟습니다.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그 작은 풀벌레의 여린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산다는 일의 간절함을 서로 나누는 일이 되지 않겠느냐고 속삭입니다.

소통(疏通)이 시대적 화두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소통이라고 부르짖습니다. 소통을 하고 싶은데 불통이 되니까 울화통이 터진다고 합니다.

진정한 소통은, 텔레비전을 끄고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듯, 어깨의 힘을 빼고 낮은 자세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을까요? 풀벌레 같은 미물이라도 '이름 모를 풀벌레'라 도매금으로 넘기지 말고 제각각의 이름-철써기, 실베짱이, 줄베짱이, 북방베짱이, 검은테베짱이, 베짱이붙이, 점박이쌕새기, 긴모리쌕새기, 애여치, 각시여치, 북방여치, 민머리여치, 왕귀뚜라미, 탈귀뚜라미, 쇠귀뚜라미, 애귀뚜라미, 알락귀뚜라미, 청솔귀뚜라미, 뚱보귀뚜라미, 모대가리귀뚜라미, 개미집귀뚜라미, 흰수염방울벌레, 각시방울벌레, 모래방울벌레, 억새종다리, 땅강아지-을 찾아 그들의 작은 귀에다 대고 진정으로 호명해 주고, 또 그들의 아픔과 안타까움을 들어주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이 가을에 새삼 일깨워봅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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