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낯선 사람이 분만실에… 진통 중 임산부들 '기겁'

의대생·수련의 등 산모 동의 없이 참관

주부 신모(37'여) 씨는 출산을 앞두고 대구 시내 한 여성전문병원을 찾았다. 신 씨는 진통이 계속되는 동안 눈을 떴다가 담당 의사나 간호사도 아닌 낯선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신 씨는 분만 직전 신체 주요 부위를 노출하고 있는데다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신 씨는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거나 자세히 들여다보며 종이에 메모를 하는 학생들 앞에서 '마루타'가 된 기분이었지만 경황이 없어서 항의는커녕 누군지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대학병원과 일부 중소병원 산부인과 분만과정에 학부 실습생이나 수련의가 산모 등의 사전 동의 없이 참관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분만 중의 산모는 신체 주요 부위를 노출하고 있어 수치심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큰데도 의료기관은 실습생이나 수련의가 참관을 못 하면 의료 교육이 부실해질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은 '지도교수의 지도'감독하에서 의대생도 전공 분야의 실습을 목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학병원은 의료기관이자 교육기관으로서 환자가 제3자 참관에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보고 실습생이나 수련의를 분만 시 입회하게 하고 있어서 산모들은 불만이 크다.

임산부 이모(31) 씨는 "출산을 앞두고 초음파 검사를 할 때나 내진을 할 때 주치의가 아닌 사람이 검사 과정을 지켜봐서 불쾌했다"면서 "난임치료를 받고 있어 협진이 가능한 대학병원을 택한 것이지 실습생 교육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실습생은 분만과정에 참여하지 않지만 수련의는 분만실에 입회하고 있다"면서 "실습생과 달리 수련의는 의료인 지위가 인정되므로 참관이 아니라 진료행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B대학병원은 산모들의 불만을 고려해 지난해부터 참관 실습 자체는 허용하지만 참관 실습생의 성별과 수를 제한하고 있다. B병원 관계자는 "간호대'의대를 불문하고 여학생 1, 2명만 입회를 허락하지만 내진을 할 때나 분만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부터는 실습생을 분만실에서 내보낸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외래 진료를 할 때나 분만을 위해 입원하는 환자에게 실습생의 참관에 동의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개인정보수집 활용동의서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산모 유모(30) 씨는 "분만과정에 입회한다는 내용의 설명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지 않고 면책수단으로 동의서를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 시내 한 종합병원 산부인과 관계자는 "실습생 참관에 사전동의를 구하려고 하면 산모가 쉽게 응할 것 같지 않아 분만실 참관 수업은 사전동의 없이 공공연하게 이뤄진다"면서 "응급상황 등 사전동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을 고려해 실습생과 수련의에게 기본 소양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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