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출혈로 쓰러진 강인구 씨

벼랑 끝 '두번째 사랑' 이렇게 쓰러지면…

김현희 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채 누워 있는 남편 강인구 씨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 씨는 자신의 삶에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남편이 쓰러지면서 삶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김현희 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채 누워 있는 남편 강인구 씨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 씨는 자신의 삶에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남편이 쓰러지면서 삶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당신 하나 믿고 살았는데 이렇게 누워버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보, 어서 일어나세요."

10일 오후 경북 경산시 와촌면의 한 요양병원. 김현희(55'여'경북 영천시 북안면) 씨는 남편 강인구(56'경북 영천시 북안면) 씨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만 쏟아냈다. 그러나 강 씨는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없었다. 강 씨는 그저 코에 호스를 꽂고 의식 없이 누워 있을 뿐이었다. 힘든 생활이지만 늦은 인연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찌 이리도 박복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고 화도 난다. 남편 강 씨는 두 달 전 뇌출혈로 쓰러졌다. 아내 김 씨는 정신장애 3급이다.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난 남편

세무 공무원이었던 김 씨는 30년 전 갑자기 닥쳐온 우울증이 조울증으로 발전하면서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고 20년 동안 정신병원을 드나들었다. 김 씨가 마음의 병을 앓는 동안 전 남편은 김 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 김 씨는 위자료도 받지 못한 채 이혼을 당했다.

정신장애에다 돈도 없는 김 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008년 1월, 마지막 입원 치료를 받았던 포항시의 한 정신병원에서 나온 김 씨는 무작정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포항에서 집값이 제일 싼 곳으로 데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자리 잡은 곳이 포항시 남구 청림동이었다.

"수중에 돈도 없고 20년 동안 정신병원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일단 집값이 제일 싼 곳에 집을 얻은 뒤 여름 홑이불 한 채로 겨울을 났죠.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김 씨가 남편 강 씨를 처음 만난 건 김 씨에게 물질적'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던 성당 모임에서였다. 강 씨는 몸도 마음도 가난하던 김 씨에게 "우리 집이 방도 더 따뜻하고 밥도 해 줄 수 있으니 오라"며 김 씨를 집으로 초대했다. 이것이 프러포즈가 돼 둘은 동거를 시작했다. 김 씨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시고 어린 아들을 잘 키워내는 걸 보고 '착실하고 내가 기대도 될 남자'라는 생각이 들어 같이 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폭염에 쓰러지다

강 씨의 삶 역시 가시밭길이었다. 혼자 눈이 먼 구순 노모와 어린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가리지 않고 일을 했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어린 아들은 생모에게 보냈다. 2009년 겨울, 이들은 '영천 쪽에 집이 싼 곳이 많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영천으로 갔다. 그리고 조립식 주택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2010년 1월, 시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김 씨가 이제 의지할 곳은 강 씨밖에 남지 않았다.

강 씨는 이즈음 영천지역자활센터의 세차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올 7월 5일. 강 씨는 작업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원인은 뇌출혈. 강 씨는 더운 날씨에다 세차장의 인력 부족으로 떠맡겨진 일을 거절하지 못해 생긴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쓰러진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씨는 영남대 영천병원으로 갔다가 대구 영남대병원으로 옮겨 6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코에 삽입된 호스에 의지해 목숨만 연명하고 있다.

"돈이 없어 아침저녁을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좀 더 잘 해줬더라면, 좀 더 좋은 음식을 먹였더라면 이렇게 쓰러지지 않았을 것 같은 후회에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막막한 병원비보다 더 막막한 앞날

강 씨 부부는 지금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 매달 60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사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지정도 강 씨가 쓰러진 뒤 주변에서 "혼인신고를 해서 기초생활 대상자로 지정받으면 혜택이 있다"고 해서 부랴부랴 혼인신고해 겨우 지정받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야속하게도 산업재해보험금은 받지 못했다. 어처구니없게도 강 씨가 쓰러진 시간이 휴식시간이어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달 병원비만 월 20만~30만원. 김 씨가 집과 병원을 오갈 때 드는 교통비 또한 만만찮다. 영천 집에서 경산의 병원까지 버스로 2시간 가까이 걸린다. 김 씨는 "집 근처에 지나가는 버스가 하루에 세 대밖에 없어 이를 놓쳐버리기라도 하면 택시를 타야 한다"며 "편도 택시비 2만~3만원을 내고 나면 밥을 굶어야 할 판"이라고 한숨지었다. 아직 완치되지 않은 김 씨의 조울증 약값 등을 합치면 60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천으로 집을 옮길 때 받은 대출금 1천만원 중 남은 대금 400만원까지 김 씨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김 씨가 조울증 치료를 위해 먹고 있는 약은 강 씨의 간병도 방해한다. 약을 먹으면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선택한 요양병원은 다행히 병원 간병인들이 봐 주고 있고, 김 씨가 이틀에 한 번씩은 남편 옆을 지키고 있지만 늘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김 씨는 조울증 치료를 위해 장애인복지관에도 나가고 있다. 치료 외 더 중요한 이유도 있다.

"복지관에선 점심을 무료로 줍니다. 복지관에서 점심을 많이 먹은 날은 저녁을 먹지 않아요. 그렇게라도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죠."

생모에게 보냈던 강 씨의 아들은 올해 중학생이 됐다. 김 씨는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뒤 충격을 크게 받은 것 같다. 지금 많이 방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남편이 빨리 일어나길 바라는 것밖엔. 그런데 그게, 기대해선 안 되는, 기적을 바라야 하는 거래요. 뭐 이렇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죠. 나는 어떻게 해야 하죠. 유일한 기둥이자 버팀목이었던 남편마저 내 곁을 떠나면…."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매일신문'대한적십자사 공동기획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