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의 청소년기, 일기장은 자신만의 신성한 사색의 공간이었다. 누가 볼새라 서랍 깊숙이 보관하던 그런 비밀스런 것이었다. 그런 시절을 비웃기라도 하듯, 요즘은 수시로 SNS로 글과 사진을 올리고 타인의 관심과 댓글을 기대한다. 어차피 보여지기 위해 올린 것이니, 인기가 하락하는 것은 아닌지, 디지털 왕따는 아닌지, 은근한 견제가 발동하기도 한다.
이렇게 부지런한 소통의 노력들 덕에 짬짬이 휴대폰으로 남들 사는 모습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단순히 구경이 아니라, 생활의 증거물(?)들을 통해 타인의 일상사를 그려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셀카 마니아의 작품을 보며 스타일 센스 채점하기, 맛집 순례 중인 식도락파들의 군침 도는 인증 샷을 보며 취향과 안목 가늠하기, 아기 보는 재미에 푹 빠진 엄마의 열렬한 모성에 가려 시들해진 남편들의 존재감을 확인하며 가족 내의 서열 매겨보기 등등….
사람은 존재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의지와 습성이 강해진 듯하다. 심리학자나 전문 프로파일러에게는 요즘처럼 개인 생활을 엿볼 단서가 증가함에 따라 훨씬 업무가 쉬워졌을 것 같다. 스마트 폰 출시 이전에는 휴대폰 벨소리나 통화연결음 정도로 상대방의 음악적 취향과 종교 정도를 짐작했다면, 요즘은 SNS에 올린 각종 자료로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가 극히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말이다.
지금은 이러한 SNS 환경 하에서 사용자간의 더 큰 배려와 자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꺼이 생활의 일부를 타인과 공유하기로 한 이상, 타인의 생각과 개성에 일일이 토를 다는 것도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자초하는 행위일 뿐 SNS의 바다에 뛰어들려면 타인의 개성과 취향을 존중해 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한편으로, 검열 없는 업로드 시스템의 약점을 뚫고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내용을 과감히 올리는 행위를 자제하는 매너도 발휘해주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라인의 '파도'타고 넘어온 방문객들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남의 사생활을 과하게 엿본 몹쓸 사람처럼 느끼게 만드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이 있듯, 온라인 공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남과 소통하며 즐거움을 나누는 공간이면서도 넘쳐나는 과잉 정보로 불편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온라인 공간 또한 나눠 쓰는 이들을 위한 배려와 자제의 미덕을 조금만 발휘한다면, 이 또한 아름다운 공개적 일기장으로 소중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조자영<한국패션산업연구원 패션콘텐츠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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