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마을은 청화산을 배경으로 작은 개천을 하나 건너면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주민들과 한마을을 이루고 있고, 용유계곡을 지나면 문경시 농암면과 접경이다.
이처럼 2도(道), 3개 자치단체가 맞닿은 화북면 입석마을은 특히 청천면 삼송리 주민들과는 행정구역만 다를 뿐 삼송리 왕소나무(천연기념물 290호)를 함께 수호신으로 숭배하며 한마을 이웃으로 인식하면서 살고 있다.
경북 입석리 150여 가구와 충북 삼송리 50여 가구 등 600여 명의 주민들이 이곳에 살고 있는데, 왕소나무도 행정구역은 충북이지만 경북도 입석리 마을과 경계지점에 있다.
◆입석리, 삼송리 그런 것 따지지마! 우린 그냥 한마을이야
이들은 교회나 진료소 등 여타 시설을 행정구역과는 상관없이 서로 왕래하며 이용한다.
학생들도 도를 넘나들며 학교를 다닌다. 오늘은 경북도민이었다 내일이면 충북도민이 되는 이웃 간 이사도 다반사다. '경북도, 충북도'라는 행정구역 명칭은 이들에게 단지 주민등록증 주소 맨 앞에 붙는 단어쯤으로만 여긴다.
말투도 경상도 상주 말도 아니고 충북 말도 아니고 좀 특이한 게 어중간하다. 약간 강원도 말씨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곳 상당수 지주들은 2도(道)에 걸쳐 땅을 소유하고 있다. 경계를 굳이 따지자면 '잠은 경상도에서 자고 농사는 충청도에서 짓는다'는 말과 '경상도와 충청도에 걸쳐 모두 농사를 짓는다' '하루에 수십 번 경상도와 충청도를 들락거린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그런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입석리 사람들은 아침이면 논이나 밭에 물을 대러 충청도에 갔다 경상도로 돌아오기를 거듭하지만 그저 자기마을을 오가는 데에 불과하다. 삼송리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김홍문 씨는 10여 년 전 충북 괴산 삼송리에서 경북 상주 입석리로 이사를 했다. 김상기 씨는 입석에서 삼송으로 이사했다가 다시 입석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도를 넘나드는 이사짐이라 해도 리어카로 개울만 건너면 되는 간단한(?) 일이란다.
김상조(66'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씨는 "18년 전에는 삼송리 아이들이 입석초등학교에 다녔다"며 "송면초등학교에서 이곳 아이들을 안 보내면 폐교 위기에 처한다고 해 그때부터 전학시켰으며, 입석초교를 졸업한 경북쪽 아이들도 중학교는 청천이나 괴산중학교로 진학할 정도"라고 말했다.
한여름이면 경북의 입석리 주민들은 더위를 피해 실개천을 끼고 잘 조성된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소나무숲공원과 왕소나무 곁으로 땀을 식히러 간다. 그곳에서 양쪽 주민들은 서로 안부를 묻는다.
이들은 "경북과 충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그런 것 따지지 말라"고 한다. "여느 마을의 이웃과 마찬가지로 길흉사나 농사일을 서로 도우는 우린 그냥 한마을 이웃일 뿐"이라는 것이다.
경계 개념이 이처럼 무너진 것은 과거 행정구역 개편과도 연관있어 보였다.
과거 상주 입석마을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으로 갔다가 문경 농암면으로 가서 1970년대에 다시 상주로 돌아왔다.
행정구역이 여러 차례 바뀌다 보니 행정구역에 대한 소속감이 희박해졌지만, 고유명사처럼 지니고 있는 부락 이름에 대한 애착은 좀 특별했다.
박현조(72'청천면 삼송리) 씨는 "이 마을 사람들은 입석리나 삼송리 등 행정 명칭을 부르지 않고 옥양동'안터'중말'큰말'양짓말'음짓말'안골 등 옛부터 불러온 자연마을 이름을 사용한다"고 밝힌다.
이들 경계마을 사람들이 행정구역을 드러내지 않고 옛부터 내려온 마을 이름에 애착을 가지는 것에 대해 서로가 이웃임을 인정하고 '우리는 한마을일 뿐'이라는 그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한마을(?)의 사랑방 입석리 보건진료소
이 같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2도 주민 생활 한가운데에는 경북 입석리에 들어서 있는 '보건진료소'가 톡톡히 한몫을 해내고 있다. 이곳 유일한 의료기관이면서 주민들의 정보 공유와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개울을 건너 경북도로 넘어온 충북사람들로 보건진료소가 붐비기 일쑤다.
박웅기(70'입석리) 씨는 "33년 전에 진료소가 생기면서 충북쪽 사람들도 이곳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며 "괴산에도 진료소가 있지만 10km나 떨어져 있어 삼송리 사람들은 이곳에 온다"고 말했다.
김 소장이 관심을 갖고 건강을 돌보는 150여 명의 노인 환자 관리 대상에는 충북 사람들이 50여 명이나 포함될 정도로 그들에게 보건진료소는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진료소에서 만난 충북의 임태분(66'여'청천면 삼송리) 씨는 "피부병이나 감기, 관절 등에 문제가 생기면 진료소를 찾는데, 이곳이 생기기 전에는 차를 타고 10분쯤 충북쪽으로 나가 송면보건지소를 이용하는 불편을 겪었다"며 "개울 건너 이 보건진료소가 생기면서 삼송리 주민들이 괴산군에 민원을 넣어 이곳을 이용하도록 요청했다"고 전했다.
임 씨는 충북 괴산군이 상주시에 보건진료소 운영비를 줘야한다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그만큼 지난 33년간 충북 사람들의 생활 속에 진료소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김 소장은 "하루 평균 30여 명의 진료 환자들 중 충북 사람들이 10여 명이나 될 정도로 그들에게 이곳은 중요한 의료기관"이라며 "살림살이의 규모나 가정사, 가족들의 병력 등을 모두 알 수 있을 정도로 이젠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보건소나 보건지소 등 큰 병원보다 진료소장이 지어준 약이 더 잘 맞다"고 자랑한다.
게다가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하는 충북쪽 사람들은 고향에 남은 부모 건강이 걱정되면 밤낮없이 김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정도다.
경북의 신현복(63) 씨는 "삼송리 주민들이 대부분 경북쪽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입석리 진료소 이용은 물론 품앗이 등 일손도 경북쪽 사람들과 서로 돕고 있다"며 "같은 마을로 인식하면서 경북과 충북을 오가는 이사도 다반사"라고 한다.
◆쓰러진 마을수호신 왕소나무 회생 기원
이들 한마을에 최근 큰 사건이 발생했다.
높이 12.5m, 둘레 4.7m에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290호 삼송리 왕소나무가 지난달 28일 15호 태풍 '볼라벤'이 동반한 초속 20여m의 강풍에 쓰러진 것이다. 매년 1월 이곳 사람들은 왕소나무에 제사를 지내며 새해의 풍년과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등 마을 수호신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충격은 남달랐다. 어쩌면 왕소나무는 양쪽 주민들이 한마을이라는 이웃사촌 인식의 구심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왕소나무는 쓰러지면서 뿌리가 많이 절단, 훼손돼 세울 경우 다른 뿌리마저 훼손될 우려가 있어 누운 상태서 문화재청이 온갖 방법을 동원 소생 작업을 벌이는 중이다. 이런 정성으로 기적처럼 소생한다 해도 왕소나무는 누운 채로 여생을 보내야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민들은 왕소나무 주변에 '천년을 지켜온 왕소나무를 살려주세요', '천연기념물 왕소나무 참사 진상 조사를 촉구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어 쓰러진 마을 수호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을 표시했다. 쓰러진 왕소나무를 두고 같이 안타까워하고 회생을 기원하는 양쪽 주민들을 보면서 이곳은 둘이 될 수 없는 한마을이란 느낌을 더욱 가지게 했다.
상주'고도현기자 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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