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저녁 별 아래 망아지가-이건청

어릴 때 나는

아지랑이 따라

들판 끝까지

달려가 보곤 했었다.

종달새가

하늘 끝으로

가뭇가뭇 사라질 때까지,

망아지 한 마리 되어

달려가곤 했었다.

너무 멀리까지 간 내가

저물 녘,

노을 속에서 길을 잃고,

저녁 별 하나 둘 떠오르면

그 별들 중의 어떤 것이

손을 잡아 주었다.

어릴 때 나는

망아지 한 마리 되어

멀리 가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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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시는 대상과 자아의 일체감을 기본적인 정서로 삼고 있습니다. 대상과 자신이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분에서인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 그것을 '서정성'(서정적 동일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에서 길 잃은 아이와 그 아이의 손을 잡아준 별의 관계가 서정성의 좋은 예입니다. 이런 정서는 시적 과장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연대가 사라진 우리 시대가 다시 찾아야 할 느낌입니다. 합리성이나 과학성이 놓쳐 버린, 시에 겨우 남아 있는 이 느낌이 메마른 이 세계를 구원할지 모릅니다.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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