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A(53'여) 씨는 달력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매년 추석이면 작은 선물 하나라도 정성껏 포장해 부모님을 찾았지만 올해는 선물은커녕 아예 고향 갈 형편도 안 되기 때문이다.
A씨가 결혼과 함께 그만뒀던 간호사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은 4년 전. 남편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다시 일을 시작했고,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세 식구가 먹고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지인의 소개로 병원을 옮기면서 A씨의 삶은 엉망진창이 됐다. 병원은 근무 첫 달 이후부터는 월급을 제때 준 적이 없었고, 올 1월부터는 아예 지급되지 않았다. 친척과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우선 급한 아파트 관리비와 전기요금부터 메워야 했고, 미처 내지 못한 가스요금이 연체되면서 올 3월에는 가스가 끊겨버렸다. 대학생 아들은 등록금을 구하지 못해 휴학해야 했고, 올여름 유난히 더웠지만 선풍기를 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A씨는 5월 다니던 병원을 그만뒀다. 실업급여라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실업급여는 빌린 생활비를 갚는 데도 부족했다. 퇴직 2개월 후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지만 여전히 체불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씨는 "그래도 나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 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한 동료는 월급을 받지 못해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충당하다 카드대금이 연체되면서 신용불량자가 됐고, 올 4월 퇴직금을 포함한 1천400만원을 받지 못한 채 퇴직했다"고 한숨지었다.
굴삭기 기사 B(42) 씨는 요즘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힘겹다. 지난 5월부터 받지 못한 돈이 900만원. 독촉할 때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통사정하는 탓에 참고 버텼지만 결국 B씨가 손에 쥔 건 공문 한 장. '건설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 체불된 임금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의 공문이었다.
그동안 모아둔 돈과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로 근근이 생활한 지 벌써 4개월째.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요즘은 집에만 있다. 3, 4세 된 아이들 키울 양육비 걱정에 추석 명절은 보이지도 않는다. B씨는 "이번 추석엔 고향인 전라도까지 가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진다"고 하소연했다.
임금 체불 근로자들이 추석을 앞두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대구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대구경북의 체불 임금은 515억원(1만2천13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근로자 수는 5.8% 줄었지만 금액은 오히려 24.1% 늘었다.
이에 대구고용노동청은 추석 전인 이달 28일까지를 '체불 임금 청산 집중 지도기간'으로 정하고 체불 임금 청산 지원에 모든 행정력을 쏟기로 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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