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언어와 달리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노래나 교향곡에 담긴 선율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만들어지기는 어렵다. 만약 심금을 울리는 선율이 매력적인 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의 제목이 '비창'이 아니라 '행복한 하루'였다면, 이 곡을 기만하는 것은 음악의 제목일 뿐이지 음악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딸림화음이 으뜸3화음으로 진행하지 않고, 다른 화음으로 진행하는 경우인 '거짓 마침'(Deceptive Cadence)도 거짓말이 아니라 나중에 올 화음적인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하나의 표현법이다. 음악은 기만의 도구가 아니다.
반면 언어는 누군가를 기만시키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엉뚱한 정보라도 청중들로 하여금 신념과 확신이 가득 찬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게 꾸며댈 수 있다. 물론 음악에서도 신념과 확신이 찬 연주가 연주자의 기대와는 달리 청중들에게는 다른 의도로 엉뚱하게 전달될 수는 있다. 이것은 고의가 아닌 거짓말을 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구두를 통한 거짓말은 글을 통해 거짓을 전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안 했어'라고 종이에 쓰는 것보다 말로 거짓말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물론 사람이 거짓말을 하게 되면 신체적으로 미세한 반응을 보이는 등 표시가 난다. 거짓을 말할 때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얼굴 근육들의 경련, 빨라지는 맥박, 높아지는 체온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훈련을 받거나, 잘못된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진실을 가려낼 수 있다.
진실은 상대적이자 주관적이지만 음악을 통해 느끼는 주관적인 진실의 관계는 절대적이면서도 객관적이다. 연주자의 신체적인 반응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음악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음악을 구성하는 '그릇'(medium)과 '콘텐츠'(message)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결합물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지배하는 세 개의 원칙은 리듬, 화음, 멜로디이다. 이 원칙들이 모두 존중되었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한다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이 원칙들이 존중되지 않으면 음악이 아름답기는커녕 지루하거나 짜증이 날 정도로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이 세 개의 원칙을 바탕으로 음악이 완성된다면 감동적인 연주를 청중과 나눌 수 있다.
연주자가 연주를 할 때 성실하게 준비를 안 했거나 해석의 의도가 불명확하면, 연주자의 모습 속에서 거짓말을 했을 때 신체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것처럼 비슷한 증상을 관찰하게 된다.
우선, 화음을 어겼을 때 나타나는 '화음의 질병' 증상을 꼽을 수 있다. 화음이 변할 때 아무런 반응이 없고, 연주의 개별적인 표현이나 색깔, 밸런스가 모호해져 의미 없는 연주가 되어버린다. 화음은 저마다의 개성과 기능이 있기 때문에 귀를 열어 잘 듣고 연주한다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리듬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면 '리듬의 자동화' 증상이 일어난다. 큰 가치의 음들을 지나치게 세분화해서 연주한 나머지 작은 가치의 음들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4개의 16분음표는 하나의 4분음표와 똑같지 않다. 작은 음들은 민첩하게 움직이고 큰 음들은 더 여유있게 움직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곡의 구조와 물리를 등한시하는 연주자에게는 '끊임없는 국수' 현상이 관찰된다. 이것은 긴 선율을 세분화 시키지 않고 하나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열 개의 음이 넘는 선율을 리듬을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세분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무언극의 절정'은 곡의 본질과 목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연주자가 시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연주할 때 불필요한 동작들을 연출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연주자는 머리, 팔, 몸을 불필요하게 움직이거나 얼굴 표정을 일부러 연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클래식 음악가의 보디랭귀지는 억지로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요구와 바람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한다.
이렇게 거짓말을 허용하지 않은 음악도 때로는 연주자의 불성실함에 의하여 청중에게는 고의 아닌 거짓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진정한 연주자라면 음악을 지배하는 원칙에 성실해야 한다. 청중 또한 연주자의 증상들을 잘 관찰해 연주에 대한 참된 의견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박종화 서울대 교수·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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