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뮤직토크] 크림(상)

영국음악을 가장 영국답게 만든 밴드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20세기 대중음악의 헤게모니는 미국으로 집중된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대중음악의 흐름은 미국화(Americanization)로 규정지을 수 있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프랑스조차 샹송과 로큰롤의 교잡종인 '예예'(ye-ye)가 유행할 정도였으니 미국 음악의 최대 소비국이던 영국은 온통 미국의 로큰롤과 재즈가 지배하고 있었다.

영국도 적당히 자존심이 상한데다 미국에서 들어온 음악이라는 것이 온통 흑인의 이디엄을 담은 재즈며 블루스며 로큰롤(로큰롤은 단어 자체의 사용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이었으니 불쾌감이 상당했다. 영국 정부는 비록 미국에서 만들어졌지만 백인 취향의 음악인 스키플을 청년층에 권장할 정도였다. 비틀스도 시작은 스키플 밴드였고 내한 공연의 역사에서 언제나 거론되는 클리프 리차드도 영국 정부의 지원을 톡톡히 받은 스키플 가수 출신이다.

하지만 런던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지극히 흑인적인 블루스에 대해 골몰하는 집단들이 있었는데 흔히 블루스 리바이벌 운동이라고 불렸던 집단이다. 이들의 음악은 브리티시 리듬 앤드 블루스 또는 브리티시 화이트 블루스라고 불렸는데 존 메이욜(John Mayall), 알렉시스 코너(Alexis Korner), 시릴 데이비스(Cyril Davies), 그레이엄 본드(Graham Bond) 같은 초기 거장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의 중요성은 영국뿐만 아니라 록의 황금기(The Golden Era of Rock)라고 불리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을 이끄는 거의 모든 영국 밴드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며 오히려 종주국인 미국 음악에도 영향을 준다.

블루스 리바이벌 운동을 이끈 이들의 고집은 이후 록 음악을 진지하게 만든 단초가 되는데 자본이나 대중들의 취향과 타협하지 않고 철저히 음악적 해석에만 몰두했다. 비틀스의 신화가 영국 록 음악의 전부인 것처럼 보였던 1960년대지만 비틀스 또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예술적 승화에 대한 딜레마 극복을 과제로 삼았던 점은 일정 부분 이들의 영향이다.

자칫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렀을 것 같은 이들의 음악은 런던의 소호를 중심으로 청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영국 전역으로 확대되어 간다. 특히 초기 거장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야드버즈(Yardbirds), 롤링스톤즈(Rolling Stones), 프리티싱스(Pretty Things) 같은 밴드들이 상업적인 성공까지 담보하면서 블루스 리바이벌 운동을 통해 표현된 영국 리듬 앤드 블루스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음악은 미국을 닮아 있었고 온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적어도 진저 베이커(Ginger Baker'드럼), 잭 브루스(Jack Bruce'베이스&보컬) 그리고 에릭 클랩톤(Eric Clapton'기타&보컬)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트리오인 크림(Cream)을 만들기 전까지는 그랬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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