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수하계곡

물길 따라 6시간,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원시자연 만끽

지도를 펼쳐들면 나도 모르는 새 좌유(座遊'다녀온 곳을 지도나 그림을 보고 앉아서 하는 여행)에 빠져든다. 한 번 가봤던 곳은 그곳 산천의 햇볕과 바람까지도 기억할 수 있다. 누구와 함께 갔는지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모두는 기억할 수 없다. 그렇지만 기억 속의 으뜸 기억을 추억이라 말할 수 있다면 추억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리라.

지도 속의 못 가본 곳은 가보지 않아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모르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팽개치면 영영 모르는 곳이 되고 만다. 호기심은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의지이자 노력의 시작이다. 신라 승려 혜초는 20대 때 낯선 길을 발길 하나에 의지하여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미르고원, 카슈가르 등 오천축국을 8년간 여행한 후 왕오천축국전이란 책을 썼다. 시인 류시화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행선지 정하기가 어려우면 지도를 몇 바퀴 돌려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찍었다. 소설가 김원일은 영천댐 상류의 입석리란 마을을 지도에서 찾아내 소설의 주 무대로 정하고 '바람과 강'이란 장편소설을 썼다.

어느 해 여름, '5-10'이란 브랜드의 계곡 등산화 한 켤레를 사고 보니 빨리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난코스로 소문이 나 있는 영양의 수하계곡을 코스로 정했다. 산 친구들을 불러 모았더니 모두 5명이었다. 수하계곡 탐사대는 오무마을에서 출발하여 강의 물길을 따라 왕피천을 따라 울진군 매화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우린 2박 3일 일정으로 출발했다.

이 코스는 어느 등반대도 종주를 시도한 적이 없는 미답지역이어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수하계곡은 강의 양안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없어 인근 마을과 마을끼리도 내왕할 수 없는 소통 불가 지역이었다. 산과 산 사이로 갈 수 있는 건 흐르는 물과 공중을 나는 새와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구름뿐이었다. 우리는 지도 한 장만 챙겨들고 '걷다 보면 마을이 나타나겠거니' 하는 무지한 용맹성을 앞세워 강을 따라 행군했다.

막연함에 기대는 우직한 믿음은 우리의 불찰이었다. 나그네가 길 떠날 때 반드시 챙겨야 할 간식 준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수하계곡은 S라인으로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한여름 뙤약볕 속의 강행군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들었다. 출발할 때 가져간 김밥은 출발 한 시간도 안 돼 동이 나고 먹을 것이라곤 소주와 육포뿐이었다.

스물 몇 개의 모롱이를 헤아려 가며 꼬박 4시간을 걸어도 강변에 집 한 채 보이지 않았다. 피부에 와 닿는 햇살은 찌르는 바늘이었고 배고픔은 고통의 덤이었다. 그런데도 눈에 보이는 나뭇잎과 풀잎들은 저마다 반짝이는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거기에다 발밑에 밟히는 모래는 강의 속살인 듯 순결미를 느끼게 했고 강물 속 바위는 이끼 하나 끼지 않은 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고 건강한 풍경이었다.

강변에는 인가가 멀기 때문인지 밭 한 뙈기 보이지 않았고 물속에는 피라미 떼들이 우리 앞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배도 너무 고프면 배고픈 사실을 잊어버린다. 아까까지는 돼지국밥과 순대가 생각나더니 "잊어버리자"고 체념하지 않았는데도 밥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시 1시간쯤 걸었으려나, 저 멀리 모롱이 끝에 사람의 모습이 어른어른 비친다. 환시(幻視)인가 싶어 눈을 닦고 봐도 사람의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휴가 온 부자(父子)가 사발무지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여기서 인가가 멀어요." "이 모롱이만 돌아가면 한천 마을이 나와요, 양지에 있는 것은 양한천, 음지에는 음한천 마을이 있지요." "식당도 있나요" "식당은 없어요, 민박집을 찾아 밥을 해달라고 해야지요." '밥'이란 소리를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울진군 서면 왕피2리 양한천 마을에 도착한 게 물길 따라 걸은 지 6시간 만이었다. 강변에서 만난 최장석 씨댁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우리는 그날 저녁 야구에서 홈런 20개, 도루 20개를 일컫는 '20-20클럽'을 넘어서 '30-30클럽'에 가입했다. 반주로 마신 소주가 30병을 넘었고 노래 30곡을 넘게 불렀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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