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가족 이야기] 또 다른 우리 가족 금붕어 '오렌지'

작년 5월 운동회 날, 둘째가 뽑기 아저씨에게서 금붕어 5마리를 데리고 왔다. 그 중 두 마리가 금세 죽을 듯해서 버리려고 했더니 한 마리가 파닥거리며 움직이기에 작은 물통에 담아 두었다. 둘째가 이름을 지어 준 하양이, 얼룩이, 까망이, 그리고 버리려고 했으나 살아난 오렌지까지 네 마리의 금붕어가 한 물통 안에 몇 달을 살았다. 공기도 없는 곳에서 답답할까봐 여름 내내 매일 저녁 물을 받아뒀다가 갈아주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그 일에 지칠 무렵, 눈 색깔이 얼룩하던 얼룩이부터 사라졌다. 처음 얼룩이가 죽은 날, 퇴근 후 둥 떠 있는 녀석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둘째는 나뭇잎에 싸서 마당에 묻어 주며 아이스 바 막대기로 십자가도 세웠다. 하는 짓이 웃기기도 하고 예뻐 그냥 두었다. 얼마 후 하양이도, 덩치가 제일 큰 까망이도 차례로 사라졌다. 처음과 달리 내가 알아서 사체를 처리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점점 죽음에 대해 무디어져 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제일 먼저 죽어 사라질 줄 알았던 오렌지는 1년이 넘은 지금도 우리 집 작은 물통 속에서 열심히 헤엄치고 있다. 올여름, 그렇게도 무더웠는데 작은 물통 속에서 잘도 견디어 주었다. 조용히 혼자 책을 보고 있을 때면 수다스럽게 뻐끔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점점 나의 손길도 게을러져 네 마리가 있던 물통은 매일 청소를 해주었지만 혼자 남은 오렌지는 보름이 넘도록 물을 갈아주지도 않고 게으름을 부린다.

하지만 저녁밥을 줄 때면 자신이 가진 모든 지느러미를 펴고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밥 주는 사람에 대해 감사를 표현한다. 붕어가 머리가 나쁘다고 했지만 우리 집 오렌지는 밥 주는 나를 알아보는 똑똑이다. 어제 받아 둔 깨끗한 물로 갈아주고 오늘은 깨끗한 물통으로 만들어 줘야겠다. 둘째는 오렌지에게도 질투를 한다. "엄마는 붕어하고 말할 때는 나에게보다 더 친절해."

이정은(대구시 서구 중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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