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한국전에 참전한 맥아더 장군의 고민은 북한군의 병참망을 차단, 적을 고립시킨 뒤 반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유력 상륙지로 선정된 곳이 인천. 하지만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해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일부 해군 지휘관들은 성공 확률이 5천 분의 1도 되지 않는다며 반대했으나 맥아더는 그렇기 때문에 더 성공할 수 있다고 우겨 미 합참본부로부터 승인을 얻었다.

북한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군산 상륙설을 흘렸고, 9월 14일에는 영덕 장사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드디어 1950년 오늘 맥아더는 작전 결행을 지시했고, 함정 206척, 7만여 명의 병력을 인근 영종도에 집결시켰다.

작전 1단계는 월미도 점령. 2시간 만에 섬을 장악한 한미 연합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으나 북한군은 108명이 전사했다. 반면 민간인의 피해가 컸다. 전열을 정비한 연합군은 다시 인천에도 성공적으로 상륙, 한국전을 반전시켰다.

북한군이 38선에서 낙동강 방어선까지 진격하는데 걸린 기간은 81일인 반면 인천상륙 이후 연합군이 38선까지 올라오는데 걸린 기간은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맥아더의 군사적 안목이 돋보인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