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느리게 읽기] 평수 늘리고 차 바꾸고…'체면 소비' 서글픈 현실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황해선 옮김/ 창비 펴냄

2가지 세상이 있다. A형은 나는 4천 제곱피트의 집에 살지만 다른 사람은 6천 제곱피트의 집에 산다. B형의 세상에서는 나는 3천 제곱피트의 집에 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2천 제곱피트의 집에 산다. 당신은 어느 쪽 세상을 선택하겠는가?

공자는 일찍이 "모자람을 근심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不患賓而患不均)고 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평등은 흔히 상대적 박탈감에서 유발된다. 결국 이 문제에서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세상은 더 작은 집일지언정, 남들보다 큰 집에 사는 B형의 세상이다. 전 세계에서 못사는 축에 드는 쿠바나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등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것은 결국은 '절대적 부'보다는 '상대적 부'가 더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우리는 잘살기 위해 가족과 삶의 여유라는 모든 행복을 포기한 채 오로지 돈을 향해 내달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기만 한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소득 분포에서 최상위층의 지출 증가는 중산층 가계의 심리적 비용뿐 아니라 좀 더 구체적 비용에 관여한다"며 "특히 중산층 대부분이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분석했다. 자꾸만 커지는 집의 크기와, 자녀들을 평균 이상의 학교에 보내기 위해 드는 비용, 차 구입 비용 등 남들의 이목에 신경 쓰기 위한 '체면 비용' 또한 급상승하기 때문이다. 풍요한 사회(Affluent Society)의 저자인 갤브레이스는 "광고업자들이 모든 면에서 더 많이 그리고 더 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처럼 중산층이 계속 소비를 늘리려면 우리는 길어진 노동시간, 저축의 감소, 부채의 증가, 늘어난 통근시간, 공공서비스의 삭감이라는 심각한 삶의 질 하락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지출 금액을 통제할 수는 있지만 다른 가계의 지출은 어쩔 도리가 없다 보니 결국 시류에 정신없이 떠밀려 경쟁적으로 더 많은 소비지출을 하면서 허덕허덕 살게 되는 것이다. 서글픈 현실이다.

이 책은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가 경제적 지위를 뒤쫓으며 삶의 질을 희생했던 중산층 위기의 본질을 파헤치고 극복 방안을 모색한 책이다. 소득불평등으로 인한 중산층의 피해가 왜, 어떻게 커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간 이 책은 결국 공공정책의 전환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경제서이지만 인간심리와 일상적 사례를 토대로 했기 때문에 경제학과 무관한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체면 소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내 삶에 대한 회한과 반성이 일 것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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