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 通] 장현갑 영남대 명예교수

한국형 마음챙김명상(MBSR) 프로그램 개발·보급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삶은 고해(苦海)다. 누구나 한 번쯤은 우울'슬픔'괴로움'좌절'고독이 가득한 고통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툭툭 털고 일어날 때도 있지만 영영 헤어나지 못하고 절망하거나 심지어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런데 '간단히 마음을 다스리고 치료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인문학과 과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심리학의 다양한 분야를 개척한 한국 심리학계의 대부 장현갑(70'사진) 영남대 명예교수다. 장 교수는 마음을 살피고 보듬으면 마음을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고 육체의 병까지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고해에 빠진 사람들의 '구원자'로 자처하고 나선 장 교수를 대구 수성구 시지동의 자택에서 만났다.

일흔 나이에도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는 모습이 편안했다. 대구경북에서는 최초로 심리학(1961년 서울대 입학)을 전공하고 27세에 서울대 전임교수가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려온 장 교수였기에 당연한 여유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편안한 웃음은 고통 속에 활짝 핀 웃음이었다.

◆죽음의 문턱

유난히 무더웠던 1995년 영남대 심리학과에 재직 중이던 장 교수는 역사문제연구소가 개최한 '항일 독립운동의 루트'를 찾아 연해주 일대를 탐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에서 강의를 듣는데 갑자기 극심한 가슴 통증이 찾아왔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장 교수에게 무리한 일정까지 겹쳐 치명적인 급성 심장병이 발병한 것.

"얼굴이 하얘지고, 식은 땀이 줄줄 나는게 아! 죽는 구나 싶었어요. 그때 불현듯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동안 참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과 '불교 명상 공부를 못해 아쉽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평소 수련한 국선도의 단전호흡을 시도했더니 차츰 안정이 됐다. 당시 매일신문 기자였던 홍종흠 팔공산문화포럼 회장과 함께 8년 동안 수련한 국선도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연해주에서 아무도 모르게 객사(客死)할 뻔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명상과 심장병 고치는 방법 찾기에 나섰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심장병 치료법을 이리저리 찾다가 클린턴 주치의가 쓴 심장법 치료법과 관련된 책을 발견하게 됐어요. 약을 먹지 않고 채식'허브'명상'운동 등으로 심장병을 고치는 법을 다룬 책인데 이를 번역하고 관련 연구를 한 끝에 관련 논문을 3편이나 쓸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이를 널리 알리는 데 매진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결심한 불교 공부에도 매달렸다. 불교식 명상을 공부하기 위해 선원에 들어가고 나오기를 수십 차례 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마음. 성이 차지 않았다. 머리깎고 스님이 될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평소 다니던 선원의 주지 스님이 그만두는 바람에 출가가 여의치 않았다. 명상에 대한 공부를 더하기 위해 1997년 국제적 명상 도시로 알려진 미국의 애리조나로 떠났다.

◆화불단행(禍不單行)

미국 애리조나에서 3개월간의 안거(安居)를 마칠 때쯤 여름방학을 맞아 대구에서 부인(고 정방자 대구가톨릭대 교수)과 딸이 찾아왔다. 마침 안거가 끝난터라 미국에서 어학연수 중인 아들과 함께 미국 일대를 3개월간 돌아다니는 만행(萬行'여러곳을 돌아다니며 닦는 수행)에 나섰다. 부인은 서울대 심리학과 동기동창이었고 같은 공부를 하는 동료이자 함께 명상을 공부하는 도반이기도 했다. 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셋째 딸은 조지워싱턴대 뮤지엄스터디 석사과정에 막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뉴멕시코, 텍사스, 미주리 등 미국 전역을 돌며 가족들과 꿈같은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즐거움과 행복도 잠시. 조지아주의 투산지역에 사는 제자를 만나러 가던 중 끔찍한 교통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아내와 딸은 숨졌고, 자신과 아들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두 다리가 부러진 그는 이후 4개월간 꼬박 병상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철저하게 인생이 바닥에 떨어진 경험이었다. 원망도 하고 절망도 했지만 이내 '나는 반드시 일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른 결과, 기적적으로 6개월 만에 목발을 짚고 일어설 수 있었다.

"사고 후 그가 제일 먼저 찾았던 책은 사고 현장에서 잃어버렸던 보리센코의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이었죠. 그 책에서 놀라운 힘을 얻었습니다.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은 의미다'는 책 구절을 맘 속으로 수십만 번 되뇌면서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으면 고통을 바탕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병상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친구들이 병문안 왔을 때 '위로하지 마라. 고통을 의미로 전환시켜 벗어나겠다'며 위로를 거절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듯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고집멸도(苦集滅道)

가족을 잃어버린 고통을 객관화 할 수 있었고 책 구절처럼 그 고통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비로소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고(苦)의 원인은 집(集)이고, 집을 멸(滅)한 결과가 도(道)입니다. 고가 왜 생기는 지를 알면 그걸 멸할 수 있게 되지요." 이 같은 경험은 그가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후 '실성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마음 공부에 매달렸다. 10년 가까이 마음 공부에 혼신의 노력을 다한 끝에 2007년에는 그 결과물을 완성했다. 바로 한국형 마음챙김명상(MBSR: 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프로그램이다. "신체의 감각을 체험하는 훈련을 시작으로 어떤 선택이나 판단 없이 마음의 온갖 생각들을 떠올려 그 생각들이 결국, 찰나에 사라져 간다는 도리를 알게 하는 훈련입니다." 장 교수는 마음 챙김과 관련된 20여 권의 책을 번역하고 출간했다. 강연도 마다하지 않았고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에도 적극적이었다. 나의 고통을 치료한 만큼 남의 고통도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몸과 마음이 연결돼 있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돼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좌표를 잃고 헤매는 마음을 '지금(now), 이곳(here)으로 모아 깨어 있는 마음으로 수련하는 것', 즉 '마음 챙김'을 통해 현대인이 갖고 있는 스트레스 관련 질환을 얼마든지 치유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명상과 의학을 접목한 명상치유학을 연구 중이다. 아직은 낯선 학문이지만 조금씩 연구의 싹을 틔우고 있다. 2010년에는 장 교수의 주도로 한국명상치유학회가 출범하기도 했다. 명상을 의학적 치료에 적용하자는 취지에서다. 장 교수는 "명상치유학은 '뇌에서 생각이 만들어지지만, 생각을 통해 뇌 구조를 바꾸고 나아가 우리의 몸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는대로 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상이 의학과 접목된 것.

장 교수와 뜻을 같이하는 심리학자'의학자'한의학자 등 200여 명이 참여해 정신질환, 근육통, 피부질환 치료에 명상을 적용한 사례를 공유하고 함께 연구하고 있다. 명상치유학은 이미 가톨릭대 의대와 강남성모병원 라이프스타일센터 등에서 임상 치료에 적용하고 있고 국립암센터, 세브란스병원 등에서도 이를 활용하고 있다. 대구에서도 동산병원 등지에서 '마음 챙김 명상 프로그램'을 곳곳에서 활용하고 있다.

◆명상과 교육의 만남

장 교수에는 요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마음 챙김 프로그램을 교육 현장에 도입하는 것이다. "치료 목적 이외에 교육 현장에도 명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특히 최근 학교 내 묻지마 폭력, 왕따'자살 등이 증가하고 있는 원인은 바로 교육 현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그동안 개발'전파한 한국형 마음 챙김 프로그램과 명상 치유와 관련된 노하우를 교육에 접목시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학교에서 지식만 주입하다보니 학생들이 자제력을 잃고 야만적 충동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어요. 하고싶은대로 다하면 병든 뇌로 퇴화되고 결국 각종 사회 병리현상이 생깁니다. 명상을 적극 활용하면 학습 능률도 오르고 청소년 범죄도 감소할 겁니다."

다행히 대구시교육청에서도 장 교수의 뜻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지난해부터 대구지역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명상 캠프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시도는 교육청 단위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올 상반기에는 대구시교육청과 함께 현직 교사 대상 MBSR 프로그램을 실시해 98%의 만족도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올 들어서는 자살'왕따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지역 학교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왕따'자살 사건을 두고만 볼 수 없어서였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이들의 심성을 바짝 태우고 있습니다. 친구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마음을 순화시키고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마음 치료가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 명상 등을 통한 맞춤형 자살'왕따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

명상 캠프에 참가하지 않고도 간단히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인터뷰 말미,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대신 물었다.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무조건 참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건 마음 치유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의미의 마음 치유는 내 감정을 자각하는 것,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알고 나아가 이를 제어할 수 있다면 이미 마음 치료에 성공한 셈이죠."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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