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웃고만 살라는 세상…눈물 꾹꾹 삼키니 행복하신지요?

살펴보면 '울음'에 관한 노래가 꽤 있다. 노랫말이 우리 사는 세상을 절묘하게 함축해 표현한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데.'(크리스마스 캐럴 '울면 안 돼') 아이들은 어른들의 '울음 금지 교육'을 통해 감정을 절제하는 법과 점잖아지는 법을 배웠다. 결국 나이가 들자 참았던 감정이 터져 나온다. 용기를 내어 울어 본다. 이런, 마른 울음이다. 어른이랍시고 울음을 부끄러움으로 여기며 참고 살았더니 정작 흘리고 싶을 때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노래가 이 노래인가 보다.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이 마음.'(가수 이남이의 '울고 싶어라')

울고 싶을 때 울고 싶은데 울기 힘든 시대다. 노랫말보다 더 실감나는 현대인들의 '울음 하소연'이 있다. 한 번 들어보자.

◆드러내 놓고 울기 힘든 사회

늦깎이로 사회에 진출한 직장인 1년차 곽모(29'여) 씨는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눈물을 떨군다. 바로 위의 직장 선배에게 혼이 나는 것이 주된 이유지만 생각해보면 그것 뿐만은 아니란다. "학교 다닐 땐 몰랐어요. 울음의 이유가 이렇게 많은지. 학생 시절엔 그저 애인과 헤어지고, 슬픈 영화를 보고 운 게 전부였는데 말입니다." 곽 씨는 회사 생활 속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속상하고, 서운하고, 서럽고, 억울하고, 분하고, 화나는 감정을 회사 건물 지하에 있는 조용한 화장실 맨 구석 좌변기에 홀로 앉아 눈물로 쏟아낸다고 했다. "저의 울음에 공감해 줄 동료가 없거든요. 그리고 실은 그러기도 꺼려져요. 혹시나 저를 문제아나 못난이로 볼까봐서요."

'혼자 우는 울음'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요즘 사회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의 저자 김혜남 박사는 "현대 사회는 속마음 읽기 싸움의 연속이다. 그래서 속마음이 남에게 읽혀버리면 경쟁에서 져 버린다는 의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혼자 우는 것은 울음을 털어 놓을 동료가 주변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먼저 자신부터 드러내 놓고 울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것.

◆눈물 권하지 않는 대중문화

"제가 가장 최근에 눈물을 흘린 것은 4년 전입니다. 냉혈한이라고요? 최근 보거나 읽고 울만한 영화'드라마'책을 찾기 힘든 게 이유입니다. 아 참. 온라인에서 이모티콘으로는 많이 울죠. 'ㅠㅠ' 아시죠? 물론 슬픔이라기보단 푸념이나 짜증의 표현이긴 하지만요. 어쨌든 일상에서 눈물 흘리기란 쉽지 않네요."

대학생 권준용(25'경북대 신문방송학과) 씨는 눈물이 메마른 이유로 대중문화의 변화를 들었다. 특히 젊은이들은 대중문화에 감정을 투영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만한 대중문화 요소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실제로 눈물을 쏙 빼는 영화는 찾기 힘들어졌다. 일명 '최루성 영화'가 더 이상 흥행하지 않는 것이 한 예다. 1997년 우리나라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편지'(최진실'박신양 주연)와 다음 해인 1998년 흥행 1위를 기록한 '약속'(전도연'박신양 주연)은 온 국민의 눈물을 쏙 뺀 최루성 멜로 영화였다. 하지만 이후 최루성 멜로 영화는 '중박' 정도는 치다가 최근 거의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와 2010년 우리나라 영화 흥행 1위는 SF 장르인 '트랜스포머3'와 '아바타'. '가을엔 멜로 영화'라는 공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직장인 장현진(29'대구 중구 대봉동) 씨는 "드라마도 자극적인 반전만 가득한 일명 '막장 드라마'가 판치고 있다. 그러면서 작품성 있는 각본을 바탕으로 만들어 야심한 밤에 눈물을 쏙 빼주던 베스트극장이나 단막극장은 사라졌다. 드라마는 눈물과 거리가 멀어졌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속에서 '눈물'이 '슬픔'을 나타내는 어휘로만 쓰이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대표적인 것이 뷰티 제품 명칭들이다. '눈물 라이너'는 눈 화장을 할 때 눈 밑 애교살을 돋보이기 위해 바르는 제품이다. '눈물 렌즈'는 눈에 눈물이 맺힌 것처럼 반짝거리게 해준다며 붙은 한 컬러렌즈 제품의 별칭이다. 눈물은 예뻐 보이기 위한 수단도 되는 셈이다.

'안구에 습기 찬다'(줄여서 '안습')라는 인터넷 유행어는 눈에 눈물이 고여 슬프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어색하고 난처한 상황을 희화화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슬픈 눈물이 아닌 '웃긴' 눈물인 셈이다.

◆울기도 그치기도 힘든 '눈물 질환' 확산

눈 관련 질환이 확산되면서 눈물이 나오지 않거나 반대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오는 등 울고 싶을 때 울기가 정말 힘들어졌다. '안구건조증'과 '비루관폐쇄증'이 대표적이다.

안구건조증은 눈물이 부족하거나 눈물이 지나치게 증발하는 등 눈물 구성 성분의 균형이 맞지 않아 안구 표면이 손상되고 자극 증상을 느끼게 되는 질환이다. 주원인은 건조한 주변 환경이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지나는 동안 건조한 환절기가 자주 찾아오는데다 실내 활동이 많아지는 여름과 겨울에는 냉방기와 난방기가 건조한 환경을 만든다.

스마트폰이 대거 보급되며 눈의 피로도가 높아진 것도 이유다. 여성들의 경우 서클렌즈 착용이나 아이라인 문신 등을 통해 눈을 자극시켜 안구건조증 유발 가능성이 더욱 높다. 이런 이유로 안구건조증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안구건조증 때문에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04년 98만 명 정도에서 지난해까지 매년 약 12%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인공눈물'로 불리는 눈물약이 처방전 없이 일반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최근 지정됐을 정도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눈물약 시장 규모는 1천억원대다.

비루관폐쇄증은 눈물이 부족한 안구건조증과 달리 내부 눈물길이 막혀 눈물이 밖으로 마구 흐르는 질환이다. 눈물은 눈물샘에서 분비돼 안구를 적신 후 눈물소관이라는 작은 관을 통해 코로 들어가 배출된다. 그런데 이 눈물소관이 좁아지거나 막혀 눈물이 눈물주머니에 고여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때 넘치는 눈물이 눈 밖으로도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오는 것. 비루관폐쇄증은 주로 노년층에서 많이 나타나는 노환성질환이지만 최근 청'장년층 환자도 늘고 있는 추세다.

◆눈물은 삶의 윤활유

18세기 프랑스 과학자 라부아지에는 눈물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 발표했다. 눈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지속적으로 촉촉한 눈 상태를 유지해주는 '기본적 눈물', 자극을 받았을 때 반응하는 '반사적 눈물', 희로애락의 감정에 따라 터뜨리는 '정서적 눈물'이다.

미국 과학자 월리엄 프레이 박사는 정서적 눈물 속에 우리 몸 속에서 밖으로 배출해야 하는 유해 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심리 치료의 한 방법으로 '울음 요법'이 등장했다. 이는 감정의 절제와 점잖음을 강요당하며 적게 울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 수명이 짧다는 가설로 이어졌다.

'울어야 삽니다'의 저자인 암 전문의 이병욱 박사는 "웃음 치료보다 눈물 치료가 더 효과적이다. 회복과 치유에 더 도움이 된다. 눈물은 천연 항암제인 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이 건강할 때는 마음과 육신이 모두 순수하고 연해서 상처도 쉽게 낫는다. 하지만 상처와 아픔이 만들어낸 수많은 생채기와 악감정이 가득한 사람은 회복이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이 모든 긴장과 체면을 풀어놓은 채 마음놓고 흘리는 눈물이다"고 말했다.

드러내 놓고 울기 힘든 세태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분석과 조언의 말을 내놓는다. 이병욱 박사는 "골방에서 혼자 울며 자기 자신과 대면할 필요도 있다. 문제는 고민을 털어놓을 이가 없어 도망치듯 골방으로 숨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아이트리 심리상담센터 권재희 소장은 "10~20년 전보다는 자신의 감정 표현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개인의 시대가 됐다. 하지만 개인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개인을 섬과 섬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서로의 감정 교환을 막는 환경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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