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수석코치(하)

수석코치(하)

"결혼을 하면 제일 먼저 느는 게 뭔지 아니?"

뜬금없는 화두였지만 미팅 시에 한 번씩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던 정동진 수석코치였기에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그건 거짓말이야. 거짓말."

기대와 달랐던지 선수들이 피식 웃었다.

"너희도 이제 장가를 가면 느끼겠지만 좋은 점만큼 싫은 점도 많은 게 결혼생활이야. 같이 살다 보면 도로 물리고 싶은 마음이 한두 번 드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여자도 같아.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거짓말이야. 집사람이 몸에 좋다고 자라를 고아왔는데 못 먹는데 묻지도 않고 했느냐고 핀잔을 주면 평화가 깨지는 징조지. 만일 아내도 자라가 아니고 곰탕이라고 하면 덥석 믿고 먹을 게 아니냔 말이다. 그래서 서로 지혜가 필요한 거야. 싫어도 좋다. 마음에 안 들어도 든다고 하면서 살다 보면 서로 적응이 되는 거지. 이런 방법을 허허실실 전법이라고 하는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들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최상의 방법이지."

"그런데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말이야."

정 수석코치가 마침내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박영길 타격코치의 타법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뒤에서 수군거리면 결국 누가 손해를 볼까? 한 번 생각을 해봐. 너희는 지도방식이 안 맞는다고 하면서 팀타율은 2할7푼으로 올랐어. 팀타율이 1위란 말이다. 그럼 이건 누가 한 거냐?"

어느새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서 있었다.

"그 기록은 당연히 여러분 자신이 만든 것이다. 여러분은 그럴만한 능력이 충분한 선수들이고 증명도 했다. 그렇다고 과연 여러분의 힘만으로 되었을까? 박 코치가 타격이론은 다르지만 개개인을 끝까지 뜯어고치려고 하지는 않았다. 타격을 더 잘 하려면 이런 이론도 있다는 것을 심어주려 한 것뿐이다. 만약 감독님 귀에 들어가 서로 불화가 생기고 코치를 바꾸면 팀타율 2할7푼대보다 더 잘한다는 보장이 있느냐 말이다. 어떻든 그동안 너희는 눈치를 보면서도 잘해오지 않았느냐? 생각을 해봐. 그동안 너희가 해온 게 바로 허허실실 전법 바로 그 자체야. 연습 때는 따라하는 듯 흉내를 내면서도 정작 타석에 들어서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래서 팀타율이 올라가니 박 코치는 더 신이나 가르친 건데 너희는 좀 성가시게 느껴진 것뿐이다. 결과가 좋으니 이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앞으로도 허허실실 전법으로 임한다. 다만 이제는 뒤에서 수군거리지 말고 당당하게 실천하도록. 팀 화합을 위해서도 말이다 알겠나?"

거짓말처럼 뒷이야기가 사라졌다. 오히려 박 코치와 선수들은 연습 시 농담도 나누면서 더 친밀하게 적응해 나갔다. 이후에도 팀타율은 2할7푼대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1위에서 벗어난 적도 없었다. 그리고 1987년 박 코치가 감독으로 취임한 첫해이면서 선수들과의 교감이 극에 달한 그해에 마침내 팀타율 3할을 달성했다.

감독의 그림자이면서 팀의 여과(필터)를 맡았던 정동진 수석코치가 거름을 준 경이적인 기록이었다.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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