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없이 무속 행위를 벌이니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무속 행위를 믿는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를 싫어하는 이들은 죽을 맛입니다. 강하게 단속을 해야 하는데 경주시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거에는 계룡산, 팔공산 등이 전국 최고 명당 터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신라 천 년 역사를 간직한 경주 남산과 각종 유물터가 최적의 명당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경주가 영험이 있는 최고의 길지(吉地)라는 얘기입니다."
한 해 1천만 명이 찾는 경주의 유명 관광지에서 벌어지는 각종 무속 행위로 인해 시민'관광객들의 불만이 높다. 경주 남산과 대왕암은 물론이고 보문단지 인근의 무장산과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 등에서도 무속 행위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고유의 토속 신앙임을 감안해 강제로 단속하고 백안시하기보다는 이를 끌어 안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왕암은 무속 행위의 본산
이달 7일 경주시 양남면 봉길리 문무대왕 수중릉 앞 바닷가. 대낮인데도 대왕암 곳곳에는 징과 꽹과리 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해변가 백사장에는 흰색의 텐트가 하나 둘씩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어 3, 4명이 한 조가 된 무속인들이 주문을 외우면서 바다 쪽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한 무속인은 인근 횟집에서 구입한 물고기를 바다에 방생하며 절을 했다. 한쪽에서는 수학여행을 온 것으로 보이는 중학생 200여 명이 이 광경을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무속인들은 연신 북과 장구 등을 울리며 무속 행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같은 시간 대왕암 앞 회단지에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얼마 전만 해도 이곳 회단지는 가족과 단체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곳이었다. 30년째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성동식당 주인 김석철(63) 씨는"과거에는 관광을 하고 회를 먹으려는 손님들로 붐볐으나 몇년 전부터 무속인들의 굿판이 자주 벌어지면서 폐업 직전의 횟집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일부 상인들은 아예 무속인들을 상대로 한 업종으로 전업했다. 이들은 횟감 고기를 방생고기로 바꿔 팔거나 무속인들을 대상으로 한 숙박업을 하고 무속 용품을 팔고 있다.
밤이 되면 무속 행위는 절정에 달한다. 어둠이 내리자 대왕암 인근 해변에는 60~70여 명의 무속인들이 초와 향을 피워두고 바다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상가 주민들은 정월대보름과 정초, 초하루, 보름, 백중 등 길일이 되면 무속인들의 수가 200여 명에 이를 때가 있다고 한다.
아침이 되면 해변 곳곳에는 이들이 사용하고 버린 돼지머리와 막걸리병, 수의, 팥, 명태 등이 버려져 있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일부 무속인들은 쓰다 남은 무속 용품들을 해변가 모래사장에 묻어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게 인근 상인들의 얘기다.
한 무속인은 "무속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들도 있겠지만, 우리처럼 신을 모시는 사람들에게는 충남 계룡산과 대구 팔공산 등과 함께 최고의 명당 터로 꼽히기에 자주 찾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천박물관 남산에서의 무속 행위
118구 불상과 탑재 석등 100여 기, 절터 147개 소로 노천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의 무속 행위는 대왕암보다 훨씬 일찍 시작됐다. 장봉식 경주국립공원관리사무소 문화자원 과장은 "과거보다 숫자가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무속 행위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달 5일 어둠이 막 내린 오후 8시쯤 남산 정상으로 오르는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앞에는 30여 개의 양초가 켜져 있었다. 이곳에서 좀 더 올라가면 삼릉계 마애관음보살상 앞에도 20여 개의 양초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정상과 가까운 큰 바위 밑에도 무속인들로 보이는 남녀 3명이 바위 밑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막걸리병과 소주병, 초와 향들이 널려 있었다.
대구에서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온 김은숙(41'대구 수성구 범물동) 씨는 "최근 TV에 소개된 남산의 7대 보물을 구경하러 왔는데, 가는 곳 마다 무속 행위가 벌어지거나 무속 용품들이 널려 있어 이를 피해 다니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촛불함이 마련된 불상 앞에서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바위 밑과 토굴 등에는 화재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지난 1월에 일어난 삼릉계 마애관음보살입상 인근 산불은 촛불함의 과열로 인한 실화였다. 너무 많이 세워 놓은 촛불들이 과열되면서 화재로 이어진 것. 다행히 빨리 발견돼 1천여㎡만 태운 채 조기진화됐으나 자칫 대형 산불로 이어질 뻔 했다.
경주국립공원 관계자는 "무속인들이 길일이라고 여기는 날에는 산 전체가 향 냄새로 진동할 정도"라고 말했다.
◆무속행위에 대한 찬반 논란
민속학자와 경주 남산을 지켜온 인사들은 '무조건 단속'만으로는 무속 행위가 절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은"외국의 경우처럼 우리나라도 '포춘텔러'(fortune-teller'무속인) 단지를 만들어 이를 제도화하고 오히려 이것을 관광상품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강압적인 단속은 무속 행위를 더욱 은밀하게 만들어 환경오염, 위화감 조성같은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동국대학교 민속학 교수인 일공 스님은"무조건 못하게 막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토속적인 신앙과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의 토속 신앙은 자연숭배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무속 행위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그는 "기도 후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계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도 거세다. 이정우 경주국립공원사무소 행정과장은"경주 남산과 대왕암 등은 우리나라의 귀중한 문화재이며, 일반인들과 공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법적으로 문화재가 있는 곳에는 무속 행위를 할 수 없으며 산불과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서도 양성화는 절대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경주'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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