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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 <제2부>] 15.샤히진다 - 살아있는 왕의 묘

아름답고 화려한 성지, 그것은 죽음에 대한 저항이었다

사마르칸트 제일의 신성한 장소인 샤히진다 묘를 찾았다. 이 아름답고 화려한 이슬람 영묘군(靈廟群)은 아프라시압 언덕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샤히진다(Shah-i-zinda)는 페르시아어로 '살아있는 왕'이라는 뜻이다.

7세기경, 선지자 무하마드의 사촌인 쿠삼 이븐 압바스는 당시 소그디아인들이 지배하던 이 나라를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위해 포교하며 다녔다. 이에 반감을 품은 조로아스터 교도들의 급습을 받고 참수를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도 죽지 않고 자신의 머리를 들고 이곳까지 와서 깊은 우물로 들어가 사라졌다. 무슬림들은 그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며, 이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을 위해 나타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곳에는 이슬람 신자들의 순례행렬이 날마다 줄을 잇는다. "쿠삼 이븐 압바스의 묘를 세 번만 참배하면 '메카'를 순례한 것과 같다"고 여겨 무슬림들의 참배가 이어지는 성지로 꼽힌다. 현지인들의 방문도 많은 것은 샤히진다 뒤편으로 일반인 공동묘지가 넓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긴 하지만 죽음의 느낌 때문인지 밝은 태양 아래에서도 서늘한 기운이 깔려 있다. 검은 비석에 무덤 주인의 얼굴 사진이 새겨져 있어 이곳저곳에서 망자들이 쳐다보는 것 같다. 그중에는 고려인들의 묘도 눈길을 끈다. 낯선 황무지에 내던져진 채 힘든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 조국의 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한 쓸쓸한 죽음 앞에 서니 마음이 짠하다.

샤히진다 입구에 들어서면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는 통로가 나타난다. 약간 가파른 이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 수를 헤아려 놓고 돌아갈 때도 숫자가 동일하다면 천국에 간다고 알려져 있다. 아깝게도 돌아올 때는 다른 출구를 사용해 내려갔으므로 천국행의 가부를 시험해 볼 수 없었다. 올라올 때의 계단 수는 43개로 기억된다. 안으로 들어서 보니 거의 모든 건물들이 푸른색의 타일과 장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사마르칸트 블루'라는 색상 이름이 생길 정도로 푸른색을 좋아했던 티무르의 영향을 받은 세계문화유산이다. 좁은 통로를 가운데 두고 약 100m 사이에 양쪽으로 티무르 일족들의 묘지 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쿠삼 이븐 압바스의 묘는 통로 맨 안쪽에 위치한다. 이곳에 있는 아름다운 문을 바로 '천국의 문'이라고 한다. 안쪽에는 예배 공간도 있어 많은 무슬림들이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가 기도를 올린다.

대략 11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차례로 세워진 이들 건물의 장식은 전례 없이 장대하고 탁월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의 모든 벽면은 푸른색 아라베스크 문양의 모자이크 타일로 치장되어 있다. 아름다운 색상과 세밀한 무늬의 타일로 치장된 영묘와 모스크는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많을 때는 40개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16개의 건조물만 남아있다. 건물 전면은 이슬람 건축의 특징인 식물 문양과 화려한 기하학 문양을 대칭적으로 디자인한 돔형으로 되어 있다. 벽면에는 자연의 힘을 보여주는 신비한 상징이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잎의 성장을 표현한 문양이다. 새싹과 줄기는 위로 또는 좌우로 향해 있다. 중국 당초문의 발달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이 문양은 통일신라의 기와 무늬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태양과 불의 상징도 함께 묘사된 그림들은 악으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생명의 나무로 표현되고 있다.

햇빛에 반짝이는 샤히진다의 찬란한 외양을 카메라 파인더로 구석구석 둘러보며 자꾸만 의아심이 느껴졌다. 아무리 성자이고 왕족들의 묘지라 해도 죽음과 연결된 공간인데 건물의 내'외부를 이토록 빈틈없이 밝고 화려하게 장식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 의문은 쿠삼 이븐 압바스의 묘실 안에 있는 계단식 석관 표지석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약간은 풀렸다. 코란에서 인용한 다음과 같은 내용, 즉 '신을 위해 일하다 죽음을 당한 사람은 결코 죽었다고 생각지 말라. 살아있으므로'라는 글이 석관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을 듣자 '샤히진다'라는 말이 '살아있는 왕'이라는 뜻의 상징성도 알아차렸다.

화려하기도 하고 또는 우아한 건축미를 강조한 샤히진다의 아름다움은 죽음이라는 어두운 의미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독특하고 화려한 미를 표현함으로써 정신적인 생명의 영원함을 선언하는 성지였다. 죽었지만 '살아있는 왕'과 이를 믿는 사람들을 위한 건축물이었다.

글·사진: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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