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태풍 '산바'가 할퀸 상처…장롱·냉장고가 '둥둥'

성주읍 주민들 망연자실

태풍으로 침수된 경북 성주군 성밖숲에서 18일 인부들이 포클레인 등을 동원해 나뭇가지와 쓰레기 등 부유물을 치우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태풍으로 침수된 경북 성주군 성밖숲에서 18일 인부들이 포클레인 등을 동원해 나뭇가지와 쓰레기 등 부유물을 치우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내 평생 이 같은 전쟁터를 본 적이 없어요. 안방에 무릎까지 물이 차올라 장롱, 냉장고가 둥둥 떠다녔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쓸 만한 게 하나도 없어요."

태풍 '산바'로 물폭탄이 터진 성주읍 시가지의 골목길 집집마다 흙탕물을 뒤집어 쓴 가재도구와 집기로 가득 쌓여 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들어찬 물을 빼기 위해 새벽부터 양수기를 돌리고 있지만 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주민들은 안방 구석까지 밀려든 토사를 끌어내고 소방차까지 동원해 흙탕물로 뒤집어 쓴 가재도구와 집기들을 씻어 보지만 역부족이다.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흙탕물만 나온다.

윤창영(45) 씨는 "억장이 무너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며 흙탕물을 쓸던 빗자루를 팽개치고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훔쳤다. 윤 씨는 평생 정직하게 살면서 알뜰하게 돈을 모아 3개월 전 읍사무소 앞에 240㎡(70평) 규모의 음식점을 마련했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 90만원 전세로 얻었다. 방바닥에 전기 패널을 설치하는 등 인테리어에만 1억원을 투자했다.

윤 씨는 "더위가 지나가고 찬바람이 불면서 이제 겨우 손님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는데 하루 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며 "전기 패널은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하고 쓰레기가 됐다"고 했다. 윤 씨는 "네 식구가 두 평도 안 되는 쪽방에 살면서 식당에 모든 것을 걸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주양현(53) 씨는 "컴퓨터와 침대 등 가구와 식자재 양념류 등 건질 것이 하나도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주 씨는 "순식간에 식당 내부로 물이 가득 차 전기 차단기부터 내린 후 열흘 전에 새로 구입한 김치냉장고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안간 힘을 써 방으로 옮겼는데 방안에도 무릎까지 물이 차는 바람에 헛수고만 했다"고 말했다.

성주'정창구 jungc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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