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달을 빚는 남자-김선영

백자 빚던 남자

영원으로 길 떠나서

한 백년 후 흙으로 부서졌네

죽어서도

생전에 빚던

둥근 달을 꿈꾸고 있었네

환한 꿈 위에 풀꽃이 피고

벌레가 울고

어느 날

한 소년이 닿아 왔네

분홍 흙이 된

백자 빚던 남자의 가슴을

곱게 반죽한 뒤

달을 하나

토해 놓았네

소년은 끌리듯

귀에 대고 들었네

곱게 내쉬는 달의 숨소리를

백자 살에서

아득하게 뛰는

한 남자의

심장 뛰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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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소재 중에는 단순한 묘사에 만족하지 않고 강렬하게 이야기를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소재는 자신의 외양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해명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가 소재와 밀착될 때 시는 비로소 제 역할을 끝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한국미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백자 달항아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간적 묘사가 아니라 시간적 서술을 통해 달항아리의 미적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달항아리에서 달의 숨소리를 듣게 됩니다.

시인·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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