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조윤선(46) 대변인은 요즘 박근혜 대선후보를 수행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내고 지난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당 대변인을 맡고 있다. 지난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 공동대변인으로 역할을 한 데 이어 박 후보가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당 대변인으로 다시 임명된 것이다. 그녀는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대변인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한 지 만 10년 만에 다시 대변인으로 대선을 치르고 있다.
"매일매일 접하는 기자들과 언론은 국민들의 반응을 한 발짝 앞서 반영하는 '리트머스시험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어요. 기자들을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이 (장수) 대변인 역할의 비결이자 노하우 아닐까요?"
새누리당(한나라당)의 최장수 대변인으로 기억되고 있는 조 대변인이지만 총선과 대선후보 경선, 대선 등 각종 선거에서만 그녀의 역할이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20일 미국 워싱턴의 고풍스러운 주택가에 소재하고 있는 대한제국 최초의 해외 공관인 주미공사관 건물이 1910년 한일강제병탄으로 일본에 넘어간 뒤 102년 만에 대한민국 정부로 소유권이 넘어오게 된 '숨은 공신'이 조 대변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문화재청과 외교통상부가 내놓은 보도자료 어디에도 조 대변인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문화유산 국민신탁'이 우리 정부를 대신해서 매입계약을 체결했다는 짤막한 정보 외에 빅토리아풍의 5층짜리 주미공사관 건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정부 소유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평소 조 대변인이 그림과 오페라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라는 책을 내고 총선 직전, '문화가 답이다'라는 책을 통해 18대 국회 4년간의 의정활동을 통해 문화정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놓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주미공사관을 되찾는 데 결정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그녀는 "제 의정생활 중 가장 보람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라며 주미공사관 매입과정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8월 말 매입 계약을 체결, 계약이 발효되고 있지만 아직 완전하게 소유권이 우리 정부로 넘어온 것은 아니라면서도 워싱턴 공사관 계약을 성사시켰을 때의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102년 만에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소유권이 넘어왔어요. 제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이 공사관 건물은 외교통상부나 문화재청 등 어떤 한 부처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정부 전 부처, 민관이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역사적인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워싱턴은 세계 최고의 엘리트 특파원과 세계 최고의 외교관이 몰려 있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입니다. 이곳을 그저 외교사적인 기념관으로만 두지 말고 한국의 고급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 주미공사관 건물을 매입하기까지 그녀의 역할을 인터뷰를 통해 되돌아봤다.
우리 정부와 교민은 물론 뜻있는 사람들이 10여 년 전부터 이 건물을 매입하려고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교민사회에서 모금운동도 벌어졌지만 집주인과의 협상은 번번이 제대로 어긋났다. 여기저기서 나서면서 집값만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집주인도 이 집을 사겠다는 한국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조 대변인이 이 건물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봄. 역사학자인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 등과 함께 '해리티지 포럼'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우리 문화유산을 공부하는 모임에서였다.
구한말 고종 황제는 서구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생각, 미국에 박정양 공사를 파견했고 당시 2만5천달러라는 거액을 마련, 공사관으로 이 건물을 매입한 것이다. 고종은 중국의 전략가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에 나온 '친(親)중국, 결(結)일본, 연(聯)미국'이라는 외교전략을 따른 것이다. 그게 1891년이었다.
이 건물은 대한제국이 매입한 최초의 해외 부동산이었다.
그러나 주미공사관은 1905년 일본과 을사늑약을 체결하면서 외교권을 박탈당하자 일본에 관리권이 넘어갔고 일본은 1910년 단돈 10달러에 이 건물을 한 미국인에게 팔아넘겼다. 주미공사관은 자주외교를 펴보려던 대한제국의 한이 서려 있는 비운의 역사가 된 것이다.
해리티지 모임에서 국회의원인 조 대변인이 적극 나서기로 결정했다. 1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매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것은 현지 공관과 문화재청 등 부처 간 이해관계 조정이 되지 않는 등 조율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조 의원은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예산확보와 ▷협상을 담당할 전문가, 그리고 ▷계약이 성사될 때까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세 가지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리고는 이 모든 일을 스스로 도맡겠다고 나섰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에 소속됐던 덕에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했다.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관계자의 도움을 얻어 해외문화재 기금으로 예산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올 초, 집주인과 협상할 전문가를 찾는 것이 시급했다. 국제변호사로 로펌에서도 일해 본 경험이 있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자 협상을 맡아줄 전문 부동산 회사가 필요했다. 젊은 기업인들과의 모임에서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도와주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마지막으로 집주인과 어떻게 협상하느냐가 관건으로 남았다. 흑인 변호사인 집주인은 그동안 수차례 매입협상을 해 온 한국인들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상태였다. 자칫 협상에 잘못 나서면 매입 협상에 나서기도 전에 집값만 올릴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등기부등본 열람도 조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조 대변인은 5월 초 워싱턴으로 직접 날아갔다. 집주인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집을 둘러봤다.
"가보니까 나무는 아주 잘 가꿔져 있었지만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등 잔디관리가 전혀 안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집주인이 지금 이 집을 제대로 관리하기가 힘들구나, 나이도 연로하고, 제대로 접근하면 팔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협상은 쉽지 않았다.
"현지 공관과 문화재청 관계자, 문화유산 국민신탁, 부동산 회사 등이 함께 일을 하는데 같은 한국말을 하는데도 통역이 필요했어요. 여러 가지 규정을 꼼꼼히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에서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단계마다 확인했기 때문이었어요."
각 부처 간에도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하자 조 대변인이 직접 나섰다. 기획재정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 외교부 장관, 청와대 수석 등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극도의 보안을 당부했고 청와대에는 집주인에게 나중에 훈장을 줘야 할지도 모르니까 준비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협상은 차근차근 진행됐다. 630만달러에서 시작된 협상가격이 결국 350만달러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8월 20일 양측간에 전격적인 사인이 이뤄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외교통상부와 문화재청 등이 생색을 내겠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이다. 매매계약이 성사된 것은 맞지만, 집주인이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등 아직 몇 가지 넘어야 할 산이 더 남아있는 상태였다.
"정말 한심했어요. 이 정부 들어 최대의 문화역사적 성과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자신들의 공을 내세우기만 하고. 이 공사관을 대한민국을 해외에 홍보하는 플랫폼으로 만들어야 할 텐데, 그런 것은 전혀 하지 않고…."
조 대변인은 "이 공사관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재단을 만들어서 시간을 두고 고민해야 할 것"이라면서 "공무원들끼리 뚝딱뚝딱 하게 되면 그냥 내부 건설업자들 하도급시켜서 대충 복원이나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대변인은 주미공사관 건물 보존재단을 만든다면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 정부부처는 물론이고 민간 전문가들이 대거 들어가고 그들을 조율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다시 했으면 했다.
박근혜 후보 대변인 역할로 돌아온 그녀에 대해 물었다.
요즘 그녀는 코디도, 수행원도 없는 박 후보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지난 총선 때 서울 종로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그녀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시 비대위원장이 박 후보였다.
그녀가 곁에서 보는 박 후보는 어떨까.
"(박 후보는) 국가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이나 일거수일투족이 맞춤형으로 된 사람인 것 같아요. 2004년 차떼기당으로 무너질 때 혼신의 힘을 다해 부활시키는 것을 봤어요. 성실하고 진심을 담아서 하니까 그게 (국민들에게) 읽히는 것 같아요. 지금 박 후보가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전직 대통령 딸로서의 대중성이 아니라 그동안 개척해서 쌓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조 대변인은 2006년 헤이그 대법관 회의에서의 결의문을 끄집어냈다. 결의문은 '정의는 실현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실현되는 것으로 보여져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녀가 결의문을 이야기한 것은 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대선 출마하나 "트럼프 상대 할 사람 나밖에 없다"
나경원 "'계엄해제 표결 불참'은 민주당 지지자들 탓…국회 포위했다"
홍준표, 尹에게 朴처럼 된다 이미 경고…"대구시장 그만두고 돕겠다"
언론이 감춘 진실…수상한 헌재 Vs. 민주당 국헌문란 [석민의News픽]
"한동훈 사살" 제보 받았다던 김어준…결국 경찰 고발 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