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는 유난히 무림 고수들이 많다. 해방 후 일본에서 들어오는 재일 한국인이 귀국하면서 여러 사정으로 도중에 머물거나 자리를 잡은 곳이 대구인데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은 도시가 부산과 함께 대구였기 때문에 많은 무술인들이 피란을 가다가 도중에 눌러앉았다.
특히 태권도나 합기도 고수들이 유난히 많았고 이들과 제자들은 반세기가 넘게 한국 무술계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왔다. 수성구 범어동에서 태권도와 택견 도장인 '민족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호진(53) 대사범을 만났다. 최근 방송을 통해 격파왕으로 명성을 날리며 대구 무림의 자존심을 높이고 있다.
40년째 무림외길을 걸어온 그는 "대구와 무술은 궁합이 맞다. 때묻지 않고 순수한 면이 있는 대구 사람들의 기질은 '꼼수'와는 거리가 멀다. 대도무문(大道無門)해야 할 무술인으로서는 딱 맞는 성품이다. 특히 무인으로서 순수하고 무도정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무술인들이 많다"고 했다.
◆무림고수
그가 악수를 위해 내민 큰 손은 바위처럼 크고 단단했다. 순간 움찔해진다. '한번 만져 볼 수 있을까요' 기자의 요청에 흔쾌히 손을 맡긴다. 솥뚜껑 같은 손바닥에 두꺼운 손가락은 휴대폰 키를 제대로 누를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다. 손날 부분에는 굵은 굳은살이 혹처럼 나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처럼 딱딱했다.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 덥수룩한 수염과 부리부리한 눈매, 거기서 뿜어 나오는 안광이 예사롭지 않다. 몸놀림은 조용했고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태권도와 택견 고수이자 격파왕 다운 최절정 고수의 내공이 느껴졌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자신이 운영하는 민족도장에서 직접 무술시범을 보였다. 정권 뼈마디마다 툭툭 불거진 제자와 손을 섞었다. 흐르는 물처럼 각종 기술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손만 갖다 대면 제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30대의 건장한 제자의 몸을 마치 아기 다루듯 한다. 태권도의 손기술'발차기 기술에서부터 택견의 본대배기 여덟마당까지…. 각종 기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부지런히 김 사범의 손과 발을 따라가 보지만 놓치기 일쑤다. 때로는 번개처럼 빨랐다가 다시 느려지고 다시 강한 타격이 오고가고…. 춤을 추는 것 같다. 간간이 도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기합소리에 깜짝 놀란다.
직접 김 사범의 손을 잡았다. 너무 쉽게 팔이 꺾여 버린다.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른 손을 놓았다. 워낙 기술들이 많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기술을 수련한단다.
"언뜻 태권도와 택견은 보기에 달라 보이지만 끝은 같습니다. 태권도는 강함에서 시작돼 부드러워지고 택견은 그 반대입니다. 강하지만 부드럽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닮은 면이 있지요." 언뜻 이해가 안 되지만 몸소 체험까지 한 마당이라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무림 외길 40년.
김 사범은 무예를 향한 외길을 40년째 걸어오고 있다. 1971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다. 무술도장이 많이 없었던 당시, 고향 안동에서 태권도 사범이었던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의 체력단련을 위해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어린 소년이었던 김 사범은 학처럼 우아하고 호랑이처럼 강력한 태권도에 금세 푹 빠졌다. 당시 스승의 품새나 발차기가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스승의 동작을 닮으려고 같은 동작을 따라하다 보니 어느새 태권도는 인생에서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어릴 적 본 스승님의 모습은 한마디로 예술이었습니다.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절도가 있어 태권도에 푹 빠져들었지요." 40년이 지난 지금도 태권도에 눈을 뜨게 해준 김광섭 선생님을 영원한 스승이자 사부로 모시고 있다.
본격적인 수련은 중학교 때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안에 모래주머니(샌드백)를 들여놓은 이후부터다. 너무 수련에 심취한 탓에 아버지가 샌드백을 없애기도 했다. "당시에는 운동하면 깡패가 된다는 생각이 많았던 터라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지요. 그러나 좋아하는 태권도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술은 이미 내게 종교와 같았습니다."
우리 무예에 대한 관심은 여러 무예를 배우는 계기가 됐다. 태권도 8단인 김 사범은 수박도(6단)에 능할 뿐 아니라 택견 인간문화재인 정경화 선생으로부터 택견(4동'최고단계)을 전수받았다. 2006년 대구에서 유일한 택견 국가 이수자로 선정됐다. 두 번씩이나 일본에 건너가 극진가라데를 창시한 고 최영의 선생에게서 지도를 받기도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했고 무술을 과연 업(業)으로 삼아도 될지 고민스럽기도 했다. "때로 복잡한 세상사에 지쳐 산속에 숨어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우리 무예에 대한 사랑과 이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범어공원 일대를 돌며 심신을 단련한다. 길을 걷다 좀 튼튼한 나무가 보이면 바로 주먹을 날린다. 하루 1천 번씩 나무를 치며 손날을 단련하고 매일 수도사에 들러 108배로 허리와 하체 운동을 한다. 오후에는 태권도와 택견의 형, 품새를 익히고 역기(바벨)로 상체 근육을 키운다. 지루할 틈도 없다. 매일 부족함을 느끼기에 멈출 수가 없다는 게 김 사범의 설명이다.
◆격파왕
무림외길만을 고집해오던 김 사범은 우연한 기회에 '격파왕'에 오르면서 무림계의 고수(?)로 등극하게 된다. 1992년 최초로 국기원에서 열린 세계태권도한마당에 참가해 쟁쟁한 고수들을 재치고 격파왕이 된 것. "재미삼아 참가했던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나서 갑자기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습니다. 이후 격파는 태권도'택견과 함께 제게 또 다른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1992년 초대 격파왕이 된 후 93년 주먹 격파왕, 발 격파왕, 97년 손날, 2001년 주먹, 2006년 손 날격파, 2008년 세계불교연맹 주먹 격파왕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한 격파의 전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올 초에는 모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격파왕대회에서 다시 한 번 최강임을 입증했다. 손을 이용해 무쇠 솥을 산산조각냈다. 뚜껑 손잡이를 손날로 격파했고, 주먹으로 몇 번 솥을 내리치자 부서졌다. 또 대리석 12장을 완벽하게 격파해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의 손에는 아직도 이때 생긴 영광의 상처가 남아 있다.
김 사범의 격파왕 등극은 오래전부터 준비(?)된 것이었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매일 저녁 소죽을 끓였습니다. 당시 장작이 미루나무였는데 재질이 연한 편이어서 도끼 대신 주먹으로 때려 땔감을 만들었죠. 그때부터 격파와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만화책 제목 같은 격파왕에 올랐지만 흔히 격파는 모든 무술의 최고봉으로 불린다. 격파에 대한 김 사범의 애정이 남다른 이유다. "격파는 굉장한 모험입니다. 일격필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순간 뼈가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격파에 나서지요. 무술의 단계상 겨루기, 품새를 모두 거친 후 격파술을 합니다." 수련의 방법으로서 격파가 가지는 의미도 크단다. "단련의 마지막 단계로 자기를 갈고닦는 수련입니다. 단련을 하지 않은 사람은 격파를 하지 못합니다."
격파에 태권도'택견 등 우리 전통무예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이종격투기의 등장으로 모든 무술은 이미 발가벗겨졌습니다. 신비가 깨진 셈이지요. 그러나 아직 격파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전통무예가 발전'계승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지요." 김 사범이 앞으로 힘이 닿는 데까지 격파왕에 도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봉사왕
그는 남을 먼저 돕는 태권도 정신 실천에도 앞장서고 있다. 요즘도 수요일이면 노인종합복지관이나 노인대학을 찾아 무료 태권도 봉사를 한다. "약한 노인이 제대로 하겠느냐는 생각은 편견이다. 무술을 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일흔을 넘긴 어르신들도 1시간 동안 흐트러지지 않고 어려운 동작을 잘 해냅니다."
올해 18년째로 2006년에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학원비가 없는 어려운 학생에게는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수련생들과 함께하는 자원봉사도 계획 중이다. 양로원'장애인 단체 등을 찾아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자원봉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약한 자를 돕고 타인을 배려하는 태권도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해외 교류 계획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과 교류를 통해 태권 체조와 품새 등 시범단 교류를 계획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도장이 인성과 예절 등 올바른 정신을 배우는 장소, 건강한 육체를 만드는 장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남녀노소 모두 제대로 된 태권도를 배울 수 있고, 또 가르쳐 태권도'택견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 사범은 지역 태권도 고단자들의 수련 모임인 무사회에서 회장직도 맡고 있다. 신동규 대사범 등 9단 18명을 포함한 회원 70여 명과 함께 매월 팔공산과 회원 도장을 순회하면서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또 무사회 차원의 봉사활동도 벌이고 있다.
◆태권'택견 상생
그가 운영하는 도장 간판에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단지 태권도나 택견을 배우고 익히는 곳이 아니라 민족의 혼을 운동을 통해 이어가기 위해서란다. "태권도'택견 등 우리 민족의 무예는 일명 '혼내주기' 무예다. 상대를 직접 때리는 것이 아니고 발기술 등으로 본때를 보여주고, 이런 힘이 있으니 날 건드리지 마라. 이게 우리 민족 무술의 힘이다. 택견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도 이런 평화를 추구하는 정신 때문입니다."
이 같은 민족혼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무술인 태권도와 택견이 협조와 상호발전을 도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태권도와 택견의 상호협조는 바로 한국 무술계의 대표적인 두 브랜드가 상생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실제 모든 무술은 각자의 장단점을 배우면서 함께 갈 수 있습니다. 태권도장에서 택견을 가르치고 택견도장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방법을 통해 두 무술 간 상생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실제 김 사범이 운영하는 도장에서는 태권도와 택견을 동시에 가르치고 있다. 또 태권도를 비롯해 종합격투기 등 최근 무술들이 점차 상업적으로 변하고 보여주기 위한 무술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왕따'자살 등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합니다. 교육자들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이 나서고 있지만 이것만큼은 저 같은 무술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을 무예'로 오인하는 아이들에게 무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남을 배려하는 무도정신을 가르친다면 분명 효과가 있을 겁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 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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