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한낮에 장주는 나무 밑에서 더위를 식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오색찬란한 커다란 나비가 되었다. 나비가 된 그는 향기가 진동하는 꽃밭에서 춤을 추었는데 매우 즐거웠다. 그래서 자기가 원래 장주인지도 몰랐다. 그때 갑자기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꿈에서 깨고 나서 자기가 장주인지 알았다. 그는 정신이 몽롱한 채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도대체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참 이상해라. 나와 나비는 다른 것일 텐데."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이 창을 흔든다. 얼핏 잠에서 깨어난 새벽은 아직도 짙은 어둠으로 덮여있다. 비를 피해 처마 밑에 날아든 어린 새들의 울음이 구슬프다. 시간이 지나면 날은 밝아오겠지만 견디기 힘든 이 두려움의 이유는 무엇인가? 도대체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다시금 존재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문다.
히말라야, 천 길 낭떠러지에서 다가왔던 죽음의 유혹은 과연 자유로운 영혼을 가져다주었을까? 노랫말처럼 한낱 먼지에 불과한 삶이라면 무엇을 바라고 이렇듯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주, 음악풍경을 읽은 몇몇의 지인들이 연락을 해왔다. 아직도 땅을 딛고 살지 못하고 있느냐는 우려의 전화였다. 사실 오래전부터 젊은 날의 영혼을 팔아버린 죄책감으로 병을 앓고 있다. 마흔을 넘기던 어느 순간, 많은 것들이 사치스럽게 느껴지고 죄스럽기까지 했다. 변명처럼 너무 많이 가진 것들에 대한 후회로 몸을 떨었다. 모두가 그렇게 변한다고 말을 하고 또 그것을 믿고 싶었지만 너무나 편하게 살고 있다는 자책이 끊임없이 가슴을 찔렀다. 어느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었고 또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해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달아나고 싶었다.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더 이상 산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2002년 유난히 추웠던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날 무렵, 팔공산 갓 바위에서 백팔 배를 마치고 짐을 꾸렸다. 그리고 무작정 인도와 티베트, 캄보디아와 베트남, 네팔을 떠돌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갠지스 강에서, 히말라야의 고원을 가득 메운 바람 속에서 존재의 무상함에 눈물을 쏟았다.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앉으면 여전히 삶은 어깨를 짓누르고 매 순간을 다시 허덕이게 만들었다. 미약하고 미욱한 사내의 슬픈 영혼은 아직도 이렇듯 흔들리고 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습니다./그러자 모든 순간은 지나가 버립니다./모든 내 꿈들조차도/바로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다니/알 수 없는 일입니다/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우리의 인생은 모두 그런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와 같습니다/예전에 부르던 그 노래는/망망대해에 있는 한 방울의 물일뿐입니다/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사람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땅바닥의 빵 부스러기와도 같습니다/연연해하지 마세요/땅과 하늘 아래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모든 것은 사라지게 됩니다/그리고 당신의 전 재산으로도 흐르는 시간은 살 수 없습니다/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우리의 인생은 모두 바람 속에 흩날리는 먼지와 같습니다(캔사스, 바람 속의 흩날리는 먼지(Dust in the wind) 중에서)
일요일 늦은 오후, 캔사스의 노래를 몇 번이고 다시 듣는다. 나비의 꿈 같기도 하고, 꿈속의 나비 같기도 하다. 문득 생각에 잠긴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될까? 아니 다시 태어날 수 있기나 할까? 무엇 때문에 이토록 괴로워하는 것일까? 애둘러 말하지 않아도 삶은 고통이다. 다만 그 느끼는 고통의 깊이가 다를 뿐, 통증은 계속된다. 다시 가을이 오고 있다. 어떤 이에게 이 시간은 새로운 시간이고 어떤 이에게는 또 한 번의 시간에 불과하다. 눈을 감는다. 쉰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서도 의문만이 가득하다. 노래의 끝에 문득 반야심경(般若心經)의 한 구절이 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아! 어쩌면 이 생의 이 인연이 최선이라면 이 마저도 받아들여만 하는 것은 아닐까?
전태흥 ㈜ 미래티엔씨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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