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사용법

천주교 대구대교구청의 성직자 묘지 양쪽 입구에는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고 새겨져 있다. 오늘은 내가 죽지만 내일은 네가 죽는다는 뜻으로 우리 모두 결국은 죽는다는 것이다. 작은 공동묘지에 비라도 오는 날이면 그 라틴어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나만 죽지 않고 당신도 곧 죽을 수 있다로 해석하면 자칫 얄밉게 보일 수도 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까 아등바등 애타게 살지 말라는 식의 허무주의로 받아들이면 한창 열심히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해석이야 각자의 마음에 달렸겠지만, 묘지 앞의 그 글은 항상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nento Mori)와 비슷한 의미이지만 좀더 현실적으로 무섭게 다가온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에 관해 대부분 두 눈에 붕대를 감고 살아간다.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도 죽음은 밀쳐낸다. 시간이 흘러 인생의 마지막 카드가 던져질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붕대는 벗겨진다. 그때 찬찬히 과거와 현재가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후회할 때는 이미 늦어져 버린다.

"엄마, 내일 내가 살 확률이 더 높은 것 같아 아니면 내일 죽을 확률이 더 높은 것 같아?" 밥상머리에서 엄마의 호스피스 경험담을 늘어놓으려면 아들 녀석은 확률로 엄마의 입을 막아버린다. 할 말은 없다. 죽음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찌 내 아들뿐이랴? 우리 모두가 그렇다. 그렇지만 아무리 간절히 피하려고 애써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인생을 카드놀이라고 생각해보자. 평균수명이 80살 정도 되니까 하루를 한 장의 카드라고 한다면 우리는 태어날 때 삼만 장의 카드를 가지게 된다. 그중에 죽음의 카드도 분명히 한 장 섞여 있다. 확률상으로는 삼만 장의 마지막에 있다고 우리 모두 은연중에 믿고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확률적으로 죽음의 카드는 가장 마지막에 있을 가능성이 많지만, 실제로 그 카드가 언제 불쑥 나올지 모른다. 11세부터 99세까지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확률보다는 카드 이야기가 더 와 닿는다.

55세 된 말기 폐암 환자 혜자 아주머니는 지난해 26살 된 딸을 잃었다. 차 사고였다. 3년 투병하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같이 다녔던 딸이 그녀보다 먼저 떠났다. 혜자 아주머니가 인생을 잘못 산 결과는 결코 아니다. 이렇게 죽음은 일관성의 법칙 없이 불쑥 다가오고 있을지 모른다. 어느 시인이 그랬다. 천 년을 살아도 한 번은 이별을 한다고. 마지막 카드를 생각하라는 것은 이별을 각오하고 이 순간을 뜨겁게 살라는 것이고 후회 없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삶이 뜨거워지려면 내일 죽음의 패가 던져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오늘은 나, 내일은 너'의 진정한 의미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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