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용 감독은 2001년 지휘봉을 잡은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패배의 쓰라림을 맛봤다. 김 감독은 옛 명성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2002년을 준비했다.
실패를 복기한 김 감독은 승부수를 띄웠다. 2001년 삼성이란 팀을 이끌면서 많은 것을 바꿨지만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함을 직감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그 풀리지 않는 숙제를 골몰히 생각한 김 감독은 친정팀을 떠났던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양준혁을 불러들였다. 이승엽과 함께 중심타선에 힘을 실어줄 왼손 거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1993년 삼성에서 프로 데뷔한 양준혁은 1998년 해태로 트레이드된 뒤 2000년에는 다시 LG 유니폼을 입은 상태였다. 김 감독은 9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한 양준혁의 기복 없는 활약에 높은 점수를 줬다. 해태 시절, 2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스승과 제자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란 명제로 이번엔 삼성의 파란 유니폼을 입은 채 다시 만났다.
왼손투수가 필요했고 유격수 자리도 허전했다.
삼성 프런트는 바쁘게 움직였고 사상 최대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SK의 트레이드 제안에 계산기를 두드린 삼성은 왼손거포 김기태와 투수 김상진'김태한'이용훈, 내야수 정경배, 포수 김동수를 내주고, 대신 유격수 브리또와 왼손투수 오상민을 현금 11억원과 함께 받기로 했다.
즉시 전력감을 내줬기에 손해를 봤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삼성은 절실했던 왼손투수와 유격수에 대한 고민을 덜어냄과 동시에 고액 연봉 노장선수들의 처리를 한꺼번에 해결할 길을 택했다.
선수단 정비가 끝나자 김 감독의 우승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국 애리조나를 거쳐 일본 오키나와'도쿄서 계속된 50여 일간의 전지훈련은 우승을 잉태하는 고된 시간으로 채워졌다.
타협은 없었다. 김 감독의 서슬퍼런 명령만이 전지훈련 캠프를 에워쌌다.
삼성 구단 관계자는 "오키나와서 일본팀과의 연습시합 중 한 선수가 교체되자 방망이를 들고 바닥을 쳤다. 힘든 훈련, 자신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행동이었다. 김 감독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곧바로 한국행을 명령했다. 그날 저녁 그 선수가 감독 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지만 감독은 냉랭했다. 코치들의 간청에 그는 겨우 전지훈련을 끝낼 수 있었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누구도 감히 감독의 말에 토를 달 수 없었다"고 말했다.
코치진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쿄에서 일본팀과의 교류전을 치를 때였다. 김 감독은 코치들을 식당으로 불렀다. 회식인가 하고 찾았던 코치들은 그곳에서 김 감독의 질타에 음식을 제대로 씹지도 못했다.
한국에서 공수해 먹던 김치도 그해 전지훈련서는 맛볼 수 없었다. 음식 불만까지 잠재울 정도로 김 감독은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선수들을 다그쳤다.
지옥훈련의 성과는 시범경기서 그대로 나타났다. 삼성은 그해 시범경기를 현대와 공동선두로 마감하며 시즌에 앞서 몸 풀기를 끝냈다.
그러나 이번에도 삼성의 발목을 잡았던 악몽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정규 시즌 초반 외국인 선수는 부상에 허덕였고 김진웅, 배영수 등 마운드까지 동반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 감독의 용병술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김 감독은 마무리 투수를 김진웅에서 노장진으로 교체했다. 마운드의 중심이 흔들리자, 삼성의 시즌 전망을 불투명하게 보는 주위의 말들이 하나 둘 떠돌기 시작했다.
4월 한 달, 삼성은 4위에 맴돌다 5월 들어 6연승을 거두며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12일에는 잠실에서 LG를 제물로 1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6월 28일부터 7월 9일까지 7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딱히 원인은 없었다. '이렇게 무너지는가?'라는 위기감이 엄습할 즈음 삼성은 연패를 끊고 다시 힘을 냈다. 이승엽과 마해영 등 중심타선이 기운을 차렸고 마운드도 살아나는 기미가 보였다.
SK에서 데려온 브리또가 타격과 수비에서 안정감을 보였고, 5월 중순 입단한 멕시코 표 외국인 투수 엘비라가 변화무쌍한 변화구와 칼날 같은 제구를 앞세워 승리의 보증수표로 자리 잡아갔다.
7월 말이 되자, 3위 그룹과는 제법 격차가 생겼다. 남은 건 KIA와의 1, 2위 다툼.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직행을 목표로 총력전에 돌입했다. 마무리 노장진이 마운드에 오른 이닝은 점점 빨라졌다.
'내일이 없는 야구'에 대한 비난도 있었지만 김 감독은 귀를 닫았다.
전지훈련 때 그토록 체력단련을 했지만 무더위 속의 총력전에 선수들은 지쳐갔다. 위기에 빠질 찰나, 이번엔 집중 호우가 기력 회복의 시간을 벌어줬다.
다시 스파이크 끈을 조여 맨 삼성은 9월 10일 LG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둔 뒤 부산아시안 게임 휴식기간을 징검다리로 10월 12일까지 거침없는 15연승을 내달렸다. 1986년 삼성이 달성한 프로통산 최다 연승인 16연승에 근접한 대기록이었다.
선두를 탈환한 삼성은 10월 17일 부산 롯데전에서 선발 임창용을 중간에 투입하는 초강수를 띄운 끝에 8대3으로 승리, 2위 KIA를 2.5경기차로 따돌리고 2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일궈냈다.
김 감독이 그렸던 한국시리즈 직행은 130경기 만에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사직구장 어디에도 우승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요란했던 자축 행사는 온데간데없고, 더그아웃에 붙은 축하 플래카드 한 장이 전부였다. 경기장을 빠져나온 김 감독은 '두 번의 실패는 없다'며 한국시리즈 전략 짜기를 시작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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