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의가 무성하다.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와 부의 편중을 해소하기 위한 해법의 하나로 제기되던 것이 대선을 앞두고 시대적 화두로까지 부상한 느낌이다. 계층과 집단을 떠나 그 명분과 당위성에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된 듯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의미와 달성을 위한 방법론에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흔히 경제민주화의 법적 근거로 꼽히는 헌법 제119조 2항을 보자.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경제 질서의 기본 목표를 천명한 제119조 1항의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를 보완해 국가의 경제에 대한 규제'조정의 범위를 규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경제민주화의 범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로 좁게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성장 및 안정과 적정 소득 분배' 와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도 포괄하는 의미로 받아들일지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경제 주체 간의 조화'가 어떤 의미인지도 애매하다. 정부가 경제 운용을 주도했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정부'기업'가계라는 경제 주체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원론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과 접근으로는 대기업의 승자 독식 구조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고착화되면서 나타나는 각종 폐해와 부작용을 해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경제력 집중과 소득 양극화,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 등 작금의 구조적 난맥상을 감안한다면 헌법상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좀 더 넓게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적정한 분배를 실현하고 소수에 의한 시장 지배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당국의 활동을 경제민주화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논쟁의 불씨가 된 헌법 제119조 2항을 현실에 맞춰 수정하고, 119조 1항의 경제자유와 2항의 경제민주화가 상충할 때 적정 선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민주화를 넓게 해석하더라도 정부 개입의 범위, 즉 대기업의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를 위한 정부 활동을 어느 선까지 용인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나 부당한 단가인하 관행 근절 등 공정거래질서 확립 활동만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까지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야당은 대기업의 소유'지배 구조를 고치기 위해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금융과 산업의 분리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여당은 공정거래질서 확립에 적극 나서되 과거의 지배구조는 인정하고 향후 순환출자를 금지한다는 게 대체적인 방침이다. 여야 모두 현재의 대기업 지배구조를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제부터는 논쟁보다는 구체적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 양극화 해소나 재벌 개혁을 위한 정책들의 기대효과와 재정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건설적인 논의가 진행돼야 하며,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경제민주화를 부담스러운 짐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밑거름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많은 대기업들이 과거 국가와 국민의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했으며, 경제민주화 논의 역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격상되면서 일부 들뜬 분위기가 보이기도 하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재정 건전성이 나쁜 편은 아니라지만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고 새 정부 출범 후 각종 복지정책이 본격 시행된다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 1천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 부채도 골칫거리지만 소비 위축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고, 수출이 줄기 시작한 것도 문제다. 언제 돌발 변수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다가오고 있다. 이런 걱정들을 열정으로 바꿀 수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생산적 논의를 거쳐 합의된 구체적 방법론을 통해 국민들의 한숨을 다시 뛰자는 함성으로 변화시켰으면 한다. 지도자는 따뜻한 가슴만으론 부족하고 냉철한 머리와 튼튼한 다리가 필요하다. 경제민주화 역시 개념과 명분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
이재술/딜로이트안진 총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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