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대통령 무덤과 村夫(촌부)의 무덤

권력자는 자신의 무덤에 꽃과 술잔을 들고 찾아와 주는 사람 중에 항상 내 편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권력이 살아있을 때와 후세들이 그 권력을 지켜주지 못할 때 무덤의 처지와 예우가 달라진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수많은 역사 속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무덤을 영원히 지키고 영생(永生)의 예우를 누리기 위해 크고 튼튼하고 비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권력이 세월과 함께 스러지면 영생의 지하 성(城)도 무너지게 돼 있다. 수십 년간 수만 명의 노예와 인민을 동원해 수백만 개의 돌로 피라미드를 쌓고 미라까지 만들었던 파라오들의 무덤도 파헤쳐졌다. 72개의 짝퉁 무덤을 만들어 권력 상실 후의 수난을 막으려 했던 조조 역시 그러한 권력자 무덤의 운명을 알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반대로 칭기즈칸처럼 영원히 아무도 못 찾을 곳에 묻히거나 등소평처럼 아예 무덤을 남기지 않은 영웅들도 있다.

그들에겐 무덤에 찾아와서 엎드려 울어주거나 한 잔 술을 건네며 향을 피워주는 사람은 없지만 그 대신 피라미드 속에서 전전긍긍하거나 짝퉁 무덤에 누워 조마조마해할 두려움 같은 건 없다. 사후의 평가가 어떻든 무덤을 놓고 수난을 당하거나 이러쿵저러쿵 참배 시비 같은 데 휘말릴 일도 없다. 후세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면 비록 무덤이 없어도 마음의 술잔을 받을 수 있고 산같이 큰 무덤 속에 있다 해도 세상 시비에 휩싸여 욕을 당하면 초라한 비목의 주인공이 된다.

대선을 앞두고 빅3 후보들이 역대 대통령들의 묘소 참배를 두고 티격거리고 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작아 보인다. 무덤 속 사람들은 아무 말도 않는데 저마다 참배를 놓고 정치적 기 싸움을 하고 있어서다.

박정희 전 대통령 무덤만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참배하겠다는 문재인 후보. 박정희뿐 아니라 이승만 묘소까지도 찾아간 뒤 '나는 당신과 다르다'는 메시지를 보낸 안철수 후보. 봉하 마을을 찾아가 화해의 이미지를 던진 박근혜 후보. 언제나처럼 이번 선거철에도 정치인들의 코스에는 현충원이나 5'18 묘역, 전직 대통령들의 묘역 같은 '무덤'이 끼었다. 국부(國父)쯤 되면 모를까. 친할아버지도 처삼촌도 아닌 사람의 무덤을 너도나도 앞다투어 찾아가는 것이 꼭 죽은 자에 대한 추모와 정치적 충성심 때문이었을까. 그보다는 무덤 속 인물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의 후광을 자기에게도 나눠달라는 속셈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문재인 후보 경우를 보자. 박정희의 정치 노선이 싫다면 참배 않으면 그만이다. 누가 무덤 앞에 엎드려 술 한 잔 쳐 달라 한 적도 없다. 자기가 참배 않으면 그 무덤 속 인물은 역적이고 그가 참배해 주는 무덤 속 인물은 구국 영웅이란 투다. 그야말로 남의 무덤에 침을 뱉는 자기도취다. 과거의 실책을 사과해야 참배하겠다면 DJ와 노무현의 무덤에도 동족에게 대포를 쏘는 적에게 5조 원을 퍼준 과오와 가족'측근의 부패를 사과 받고 가야 앞뒤 말이 맞다. 아마도 그는 연평도에 포를 쏘고 천안함 장병을 죽이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북한이 불러주면 버선발로 달려가 김정일 무덤에 향을 피울지도 모른다.

안철수 후보는 어떤가. 박정희에다 이승만 묘역까지 찾아갔으니 통 큰 남자다? 모두를 포용하는 통 큰 정치인이라면 무덤 방문 아닌 다른 행보에도 행동의 크기가 같았어야 했다. 그러나 출마 선언 기자회견 때는 그가 찾아갔던 무덤의 두 주인공 쪽과 가깝다고 여겨지는 일부 반좌파 성향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발언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어느 재벌그룹의 종편 방송기자는 손을 열 번 들었는데도 외면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선거 시작도 전에 이미 좌우 편 가르기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무덤 참배의 진정성이 의심되다 보니 이런 의문을 갖는 국민도 없지 않을 것이다. 과연 그들이 모두 조상 묘소를 참배하는 듯한 마음으로 대통령 무덤들을 찾아갔을까. 아니면 '저 친구는 어느 무덤에 향을 피우는지 보자'는 시선에 떠밀려 간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쪽 무덤에 가기만 해봐라'라는 지지 세력의 눈치가 두려워서?

엿새 후면 추석. 크고 위용 있는 묘역에 누워 표 눈치에 떠밀린 초짜 정치꾼들의 참배로 입 초사에 오른 대통령들보다, 손주들에게 둘러싸여 맘 편히 송편이나 얻어먹는 자그만 무덤 속 촌부(村夫)가 훨씬 더 행복할 것 같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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