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올해 3월 졸업과 동시에 한국수자원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에 취직한 제자들이 찾아 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열린 고용' 정책의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다. 작년 겨울 자기소개서 작성하는 것을 도와주며 제법 친해졌는데,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두 제자의 얼굴에는 이제는 선생님과 같은 직장인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많이 배우고 있어요." 직장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에 제자가 말한다. 낯선 타지에서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일을 배우고 조직 속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씩씩하다. 두 학생은 전기과에서 최상위 성적이었고, 전기기능사 자격증과 뛰어난 영어 실력을 겸비한 수재들이다.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취업으로 결정하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했다.
거대한 전기 시스템을 다루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또 얼굴에 화색이 돈다. "학교에서 전공 지식을 배웠지만 여기서는 실제적인 것들을 엄청 많이 배워요. 복잡하고 힘들긴 해요. 그래도 상사들이 잘 가르쳐주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왔다고 많이 예뻐해 주십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폰지처럼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면서 그 나이만의 참신함과 발랄함으로 직장 분위기를 젊게 만드는 새내기의 힘. 이야기하는 내내 제자들은 멋있어 보였다.
"그래도 어디 쉽기만 하겠니? 어느 직장이든 처음 3년은 힘들지. 너희는 (대학에 가는 아이들보다) 4년을 더 벌었으니 4년 동안 고생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배워라." 잔소리와 걱정을 업으로 삼고 사는 교사는 또 훈계를 한다. "알아요. 열심히 할 거에요. 영어 공부도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커피 심부름도 고맙다 생각하고 잘해요. 저는 배우는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멋진 제자들 덕분에 교사는 마냥 행복해진다.
취업철이다. 특성화고가 대학 진학 대신 취업으로 방향을 선회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학생도, 학부모도 취업에 관심이 많아졌다. 고졸 취업 확대 정책으로 특성화고 학생들이 취업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학교 경우에도 1학년 때부터 취업 기초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자격증 취득을 위한 방과후수업이 각 전문 과별로 개설되어 있고, 자신의 끼와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창업 동아리가 활발하게 운영된다. 이 모든 노력과 시도들이 더 많은 고졸 취업자를 창출해 낼 것이며, 한동안 무시되었던 기능인의 자부심을 키워줄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을 사회로 보내는 교사의 눈에는 아쉬운 것도 있다. 몇몇 현장에서 취업 준비생들에게 지나치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한다든지, 어리다고 함부로 말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내 자식이 당하는 것처럼 속상하다.
"저희는 많은 월급을 바라지 않아요. 아직 저희가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잖아요. 실력이 늘어날수록 그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으면 돼요." 어른스럽게 제자들이 말한다. 아직 스무 살. 저 여린 어깨에 다가오는 시련이 그리 크지 않기를, 일하면서 자신감과 행복감을 맛보기를, 학력이 아닌 실력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되길 소망하며 굳은 악수를 한다.
이금희 대구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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