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나 소설을 쓰지 못한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제대로 쓸 줄을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쓸 줄은 몰라도 어설프게 흉내 정도 낼 줄은 충분히 안다. 그래도 시나 소설은 쓰지 않는다. 단순히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쓸 생각 자체를 갖지 않는다는 말이 오히려 맞을 것 같다. "수십 년 세월 동안 수필을 써 왔으면 이제 시나 소설도 한번 써 보시지요."
어쩌면 질문 같기도 하고 어쩌면 요청 같기도 한 이 말을 주위의 지인들로부터 여태껏 심심찮게 들어왔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칼로 무 자르듯 일축해 버리곤 했다. "아직 수필도 뭔지 확실히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 시나 소설까지 넘보겠습니까?" 이렇게 대답을 해놓고 봐도 기분이 별로 개운치는 않다. 그들이 무슨 복선을 깔고서 그런 소리를 꺼내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속마음을 나는 모르겠다. 단순한 인사치레라면 그냥 대수롭잖게 넘기고 말 일이지만, 혹여 은근히 시와 소설을 수필보다 윗길에 두고 하는 말 같기도 하여 배알이 뒤틀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여기든, 수필만이 내가 옆 돌보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라는 나의 심지(心志)에는 조금치의 흔들림도 없다.
반풍수가 집안 망친다는 속담이 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도 있다. 이 금언들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수필가로서의 길에 맏아들처럼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 준다. 왕왕 시도 쓰고 소설도 쓰면서 수필에까지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만난다. '참 능력 한번 대단한 작가이구나!' 싶으면서도 어쩐지 그리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문어발식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기업들을 심심찮게 본다. 그런 기업은 십중팔구 얼마 안 가서 망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전문성의 부족 때문일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인가 한다. 시와 소설, 수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이 시면 시, 소설이면 소설, 수필이면 수필 어느 한 분야에 목숨 걸고 달려드는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우물을 파도 될까 말까 한 마당에 이곳저곳 여러 우물을 파서야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자명하지 않은가? 무릇 세상 모든 일에서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그쪽으로 알아주는 고수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기왕에 이 길로 들어서서 수십 년 세월을 달려온 이상, 나는 오로지 수필 하나에 작가로서의 전부를 걸어 보겠다며 오늘도 다짐에 다짐을 놓는다. 이것이 내가 지금껏 시나 소설은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쓸 생각이 없는 까닭이다.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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