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역경과 힘듦이 사람을 더욱 강하게 한다

최근 세계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프랑스 샴페인 지방을 방문했다. 최고급 와인에 쓰이는 포도는 대부분 평지가 아닌 비탈 언덕에 심겨져 있었다. 보통 10m 이상, 깊은 곳은 35m까지 포도나무 뿌리가 뻗고 평지에는 고급와인에 쓰는 포도는 심지 않고 옥수수가 심겨져 있었다.

산비탈에 깊이 뿌리를 내린 채 알맹이를 맺은 포도가 최고급 와인을 만들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이런 위기와 어려움이 사람이나 사회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풍족한 도시였다. 섬유 수출이 잘 되던 시절이었고 많은 외국 바이어들이 대구 섬유를 사기 위해 호텔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건설업도 활기를 띠어 당시 청구, 우방, 보성, 서한 등은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었다.

그러나 1993년 정권이 바뀌면서 대구에 짓기로 했던 삼성자동차공장이 부산으로 이전을 결정했다. 1994년에는 대구경북 출신 두 전직 대통령이 조사를 받더니 급기야 구속까지 됐다.

1995년에는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 도중에 폭발사고가 일어나 재해 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게다가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이 터지면서 대구의 이미지는 더 나빠졌다.

생산지수나 소득 등도 전국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예전 명성은 다 사라지고 희망이 없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대구에서 사업을 하는 필자로서는 대구사람이라는 자부심은 온 데 간 데 없고 오히려 답답하고 변화와 발전이 없는 도시에서 왔다고 상대가 생각할까 봐 괜한 걱정을 한 적도 있었다. '얼마나 어렵습니까?'하고 다른 도시 사람들의 인사가 부담이 될 정도였다.

호주에 가면 '돼지새'라는 새가 있다. 원래 새였는데 천적이 없다보니 날지 않아도 먹을 것이 많고 해치지 않아 슬슬 걸어 다녔다. 그러다 보니 날개는 점점 퇴화했고 결국은 살이 쪄서 날지 못하고 기어 다니는 새가 되었다. 어려움이 없으면 동물이든 기업이든 도시든 퇴화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까지 대구가 겪은 어려움이 단순한 어려움으로 끝나기보다 더 경쟁력 있게 높이 날기 위해 주어지는 고난이었다고 본다.

대구는 지금 다시 일어서고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와 대구국가과학산업단지 조성, 도시철도 3호선 건설 등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8월 열린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새 출발의 신호탄이었다.

얼마 전에는 글로벌 기업 현대중공업과 미국 커민스사가 합작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다음 달 10월 11일은 20년 만에 대구에서 전국체전이 열린다. 필자도 이번 대회에 말이나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한 번 시민의 한 사람으로 뛰어볼 계획이다. 이 모든 것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일부터, 기업은 기업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이러한 고통과 인내를 무릅쓰고 넘고 이겨나가야 한다.

2012년 프로야구에도 삼성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꼭 우승해 주리라 믿는다. 특히 해외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돌아온 이승엽 선수가 열심을 다하는 모습이 모두에게 힘을 주는 것 같다. 세 번에 걸친 태풍도 우리지역을 피해갔다. 가을이 오고 모든 결실이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다.

이 계절을 맞이해 우리 다시 한 번 뛰어보자. 곤란과 고통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궁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통한다 하지 않은가.

추석을 맞아 붉게 영근 대추 한 알에서도 천둥과 바람을 이겨내는 생명의 진리가 있음을 표현한 시가 있어 소개한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시 '대추 한 알'-

최영수/크레텍책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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