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내 인생의 연극무대

지금에 비할 수 없이 과히 내향적이었던 중학 시절, 교내 연극 대회에 모든 반이 참가하라는 지시에, 어찌어찌 하는 사이 우리 팀이 반 대표로 결승에 오르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강당을 메운 학우들 앞에서 펼쳐지는 결승 무대, 그동안 항상 대범했던 우리 팀 주인공은 어쩐 일인지 공연 한중간 갑자기 맨 마지막 대사를 내뱉는 통에 우리의 공연은 클라이맥스도 없이 반쪽으로 막을 내려야 했고, 그것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연기 생활이 되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도 잠시, 정작 수줍음 많던 내가 긴장을 잊고 변신한 모습에 짜릿한 희열을 느낀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때였다. '내가 모르던 내가 숨어 있었나?' 생각하게 된 순간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은 누구나 평생 안고 사는 수수께끼인 듯하다. 우리는 각종 성격 테스트, 혈액형별 성격 풀이, 체질 분류 설문지 등에 은근히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테스트를 통해 '나'를 특정 부류로 카테고리화하고 검증을 거치며 조금이나마 '나'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려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 대한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은 것은, 개인의 타고난 기질 외에도 사회에서 요구되는 여러 가지 '다른 나'의 역할을 수행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선천적 나'와 '후천적 나'가 혼재되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자아를 통제하지 못할 정도의 다중인격과 같은 심각한 증세가 아니라면, 정상적 범주 내에서 여러 면모의 '나'를 카드 패로 손에 쥐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오히려 큰 강점이 된다. 가정 내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 그리고 직장 내에서의 '나'가 완벽하게 동일하기는 힘들다. 되려, 지나치게 일관된 한 가지 캐릭터를 고집하다가는 융통성이나 사회 적응력을 심각하게 의심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나'를 선택하고 표출하는 기술은 삶의 연륜에서 얻어지는 사교의 윤활제요, 비즈니스상의 강력한 무기임은 분명하다.

어떤 때에는 다양한 캐릭터의 나와 대면하면서 삶의 자극이 되기도 한다. 마치 연극배우가 새로운 배역에 도전해 성공적으로 연기해낼 때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주어지는 배역에 맞게 내 안의 나를 끌어내어 보자. 시간과 장소, 상황에 맞게 '나'를 연출해 보자. 같은 피아노곡도 어떤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지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해석되듯,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도 새로운 주인공과 마주하는 순간, 신선한 에너지로 채워지리라.

조자영<한국패션산업연구원 패션콘텐츠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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