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경색 쓰러진 이순덕 씨

어머니는 병상에서도 불편한 딸·남편 걱정뿐

다운증후군 환자로 정신지체 1급의 중증 장애인인 딸 강찬선 씨가 어머니 이순덕 씨를 돌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다운증후군 환자로 정신지체 1급의 중증 장애인인 딸 강찬선 씨가 어머니 이순덕 씨를 돌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자, 기도하자"

24일 오후 대구 중구 동산동 동산병원의 한 병실에서 이순덕(64'대구 수성구 파동) 씨가 딸 강찬선(32) 씨의 손을 붙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이달 15일 오후 집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져 바로 병원에 입원한 이 씨의 기도에는 자신을 위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

"어서 집 나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해 주시고, 남편도 더 이상 술로 세월 보내지 말고 주 예수의 은총을 받아 강건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오른쪽이 마비된 상태에서 소리조차 겨우 내는 아내의 기도를 지켜보는 남편 강무웅(70) 씨는 이 씨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지난날의 삶이 미안하고, 아픈 이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할 뿐이다.

◆가시밭길 결혼 생활

강 씨와 이 씨는 40년 전 서울에서 처음 만났다. 신발가게 점원이던 스물넷의 처녀 이 씨는 신발가게 옆에 살던 서른 살 강 씨를 우연히 알게 됐다. 이 씨는 자주 신발가게 앞을 기웃거리던 강 씨와 어느 순간 서로 가까운 사이가 돼 데이트도 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이 씨는 "지금 남편이 당시에 서울에서 뭔가를 해 보려다가 가산을 거의 다 날렸다는 말에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거기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강 씨와 이 씨의 사이는 깊어져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이 씨 집안의 반대가 너무 거셌다. 결국 이 씨는 집안에서 쫓겨나다시피 했고 그때 강 씨와 함께 대구 수성구 파동으로 내려와 살게 됐다. 이미 가세가 기울어진 집안에 남아있는 살림살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때부터 강 씨 부부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남편 강 씨는 계속 일용직노동을 통해 돈을 벌었고 아내 이 씨는 농사를 돕거나 파출부, 섬유공장 직원 등으로 돈을 벌었다.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련과 고통은 강 씨 부부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강 씨가 12대 국회의원 선거 운동원으로 일하던 1985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척추와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당하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이 때문에 지금도 강 씨의 이마에는 인공 두개골뼈가 삽입된 자국이 보이고 한쪽 다리길이가 짧다.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된 강 씨는 툭하면 술을 마신 뒤 이 씨와 자주 다퉜다. 결혼 후 달라진 강 씨의 모습에 이 씨는 많이 놀랐지만 슬하의 두 아이를 생각하며 꾹 참았다. 이 씨는 이때부터 신앙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남편과 충돌이 있을때마다 '하나님, 이 불쌍한 영혼을 구하소서'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더군요. 하나님과 예수님이 없었다면 삶을 견딜 수 없었을 겁니다."

결국 이 씨는 1992년 강 씨에게 이혼을 선언했다.

◆집 나간 아들, 온전하지 않은 딸

강 씨와 이 씨 부부는 법적으로는 이혼한 상태지만 같은 집에 살고 있다. 두 아이 때문이다.

둘째인 찬선 씨는 지금 다운증후군 환자로 정신지체 1급인 중증 장애인이다. 찬선 씨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녀의 몸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당장 심장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을 집도한 의사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의사가 '15세 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으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이를 포기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녀는 지금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같이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씨는 이런 딸이라도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씨는 "어떨 때는 술 먹고 말썽 피우는 남편보다 옆에서 손잡아주는 딸이 더 낫다"며 웃음 지었다.

이런 이 씨도 17년 전 집을 나간 아들 태규 씨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들은 막노동과 공장일 등으로 돈을 벌어 오는 부모의 삶을 지긋지긋해했다고 한다. 그러다 17년 전 어느 날 아침, 태규 씨는 "이런 지긋지긋한 가난을 견딜 수 없다"며 숟가락을 내팽개치면서 일어나 대문 밖을 나가버렸고 그 뒤로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 씨는 "가끔씩 전화를 걸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아마 아들이 전화를 건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고 말했다.

◆"119! 119!"

이 씨가 쓰러진 건 이달 15일 오후 1시쯤이었다. 점심을 준비하던 이 씨는 갑자기 눈앞이 빙글빙글 돌면서 어지러워지더니 갑자기 쓰러졌다. 쓰러지기 며칠 전에도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 살짝 어지러움을 느껴 비틀거리다 왼쪽 머리를 어딘가에 부딪쳤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남편 강 씨는 당황했다. 워낙 병원과 거리가 먼 삶을 산 건강한 체질의 아내였기 때문에 이렇게 쓰러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 씨는 이 씨가 "119! 119!"라고 쓰러지면서 낸 소리에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바로 소방서에 연락해 구조를 요청했다.

일단 입원은 했지만 김 씨 부부는 앞으로가 걱정이다. 가족 중 아무도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기초생활수급비 80만원으로 버텨야 하지만 당장 낼 병원비가 문제다. 김 씨는 "어떻게든 집안에 있는 돈을 모아 병원비를 먼저 지불하겠지만 그것도 첫째 달만 가능하지 6개월 이상 받아야 하는 치료비를 감당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씨가 한 달에 지불해야 하는 병원비는 대략 100만원 이상. 앞으로 재활치료 등 추가 치료를 받으려면 기초생활수급비 80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 씨는 계속 남편 걱정이다. 이 씨는 자신이 쓰러지면서 남편 강 씨가 거의 끊다시피한 술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고 속상해했다. "이혼서류에 도장 찍은 다음에 아이 때문에 남편과 따로 살지는 않았지만 술을 완전히 끊으면 다시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어요. 제가 남편의 건강과 안녕을 같이 빌고 있다는 걸 남편도 알고 있을는지…."

이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걱정했다. 이 씨는 "매일 남편이 다시 일어서고 아들이 다시 돌아오길 빈다. 병원비는…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도와주실 거라 믿을 뿐이다"며 애써 웃음 지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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