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현철의 별의 별이야기]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피에타' 남자 주연 이정진

망설였던 '김기덕 영화' 도전했더니 '태극전사'된 영광

"축하합니다." 배우 이정진(34)이 지난 한 달간 어딜 가든지 들었던 인사다.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 '피에타'의 남자주인공. 이정진은 "요즘 불특정 다수에게 인사를 많이 받는다. 특히 뉴스에 많이 나오니깐 저의 과거 영화도 모르고, 또 이 분야에 관심 없는 어르신들도 축하인사를 하시더라"며 웃었다.

이정진은 잘나가던 패션모델 활동을 접고 2000년 영화 '해변으로 가다'로 데뷔한 뒤 '해적 디스코왕 되다'와 '말죽거리 잔혹사' 등에 출연했다. 꽤 많은 작품에 출연한 그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정진은 "'피에타'는 10년간 따라다닌 '말죽거리 잔혹사'의 꼬리표를 없애준 영화"라고 좋아했다.

"일단 제 대표작이 바뀌었어요(웃음). 또 너무너무 큰 상이에요. 한국 영화사에도 길이길이 제 이름이 영화와 함께 남아있을 거잖아요? 물론 이것으로 만족해선 안 되겠죠. 영화든 드라마든 다음 작품을 빨리 정해서 인사드리는 게 제 역할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 수상 덕에 더 많은 작품으로 인사드리는 기회가 생길 것 같아 좋아요."(웃음)

'수상' 예상 않아 프랑스 여행…시상식에 못 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순간이었지만 이정진은 시상식 현장에 없었다. '피에타'의 공식 일정이 끝나고 프랑스 파리를 여행 중이던 그는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없어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정진은 "무척 아쉽다"며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긴 했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주위 아는 사람들을 통해 서울에 전화도 했는데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전화로 최고상 수상 소식을 접했던 그는 "처음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믿어지지 않았고 당황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또 "생각해보면 지금도 얼떨떨하다"고 웃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 축하인사와 함께 '정말 수고했어요. 고마워요'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그런 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태극전사에게나 하는 말이고, 배우가 듣기 힘든 말인데 좋더라"며 현장에 없었던 아쉬움을 날려버렸다.

'피에타'는 잔혹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가는 남자 강도(이정진)에게 어느 날 엄마라는 여자(조민수)가 찾아오면서 비극적인 이야기를 전개한다. 엄마라는 존재에 무섭게 빠져드는 강도와 그 가운데 드러나는 둘 사이의 비밀이 섬뜩하다. 김기덕 감독의 예전 영화보다는 많이 완화됐다고 하나, 잔인하고 잔혹한 면이 없지 않다.

배우들이 고생한 티가 역력히 드러나는 영화다. 이 때문에 김 감독과 조민수, 이정진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이 많다. 물론, 이정진의 연기가 살짝 아쉬웠다고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정진은 쓴소리를 달게 받아들였다. "당연히 안 좋은 소리를 하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관객들에게 외면받으면 끝인데,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발전도 있고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작비 1억5천만원으로, 촬영 12회차 만에 끝난 영화. 이정진은 김기덕 감독의 촬영 스타일을 오롯이 경험했다. 새로운 경험이 신선했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 "감독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죠. 솔직히 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어요. 2주라는 시간이 손발 맞추다 끝날 수 있는데 감독님은 아니더라고요. 날씨가 안 도와주면 촬영장을 바꾸거나 시간을 미루는데 어떻게든 찍으시더라고요."(웃음)

사실 영화에 캐스팅됐을 때 김 감독을 향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영화계 이단아, 난해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감독이라는 등 선입견이 있었다. 김 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도 "감독님 왜 저죠?"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단다. 김 감독은 조심스러워하는 이정진에게 "그냥 하면 된다"며 따라오길 원했다. 이정진은 받아들였고, 영화의 한 축을 제대로 담당했다.

관객들 연기력 논란은 당연…내 발전의 기회로

최근 들어 도전적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다. 로맨틱코미디의 주인공으로 달달함을 전했던 그는 아동성범죄자('돌이킬 수 없는'), 악랄한 채권추심원('피에타')에도 도전했다.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도 고정으로 출연했다. 그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며 "주어진 것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한다. 좋은 기회가 많이 왔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보면 무리일 수도 있었겠지만 의도된 건 아니었다"고 했다.

34세라는 나이면 결혼을 생각할 만하다. 특히 전작 '원더풀 라디오'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이민정이 이병헌과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를 하는 걸 보면 부럽지 않을까.

이정진은 "이민정 씨의 열애는 정말 축하한다"면서도 "나보다 나이 많은 배우들도 결혼 안 하신 분들이 많다. 이병헌, 정우성 등 형님들을 먼저 보내야 할 것 같다"고 넘어간다. 그러면서 "솔직히 말해 내가 당장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러울 정도의 나이는 아니지 않으냐"고 은근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감독님께서는 상을 기대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조)민수 누나와 나는 파티를 즐기려고 베니스로 간 거였다"며 "감독님이 말했듯 이 상은 대한민국이 받은 거다. 고생한 스태프 등 대한민국 촬영 여건을 고려한 상이라 값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진심이 통한 덕일까. '피에타'는 50만 관객을 넘었다.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상영관 300여 개로 이뤄낸 결과라 주목할 만하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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