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은 주례사 쓴다는 말을 흔히 한다. 글 좀 쓴다고 나이나 경력이 일천한 주제에 건방을 떠는 것이 아니라 음반이나 가수에 관한 글을 좋게만 써 줄 때 그런 말을 한다. 변명을 하자면 오다가다 얼굴 마주칠 사이에 독한 평론을 하기도 쉽지 않고 평론 문화 부재 속에서 비판이 긍정적으로 인식되지도 않으니 한국대중음악을 논할 때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쫄기'(이 말, 표준어 운운하진 말자) 마련이다. 오늘 소개할 아티스트와 앨범도 주례사다. 진짜 마음먹고 또 대놓고 쓰는 주례사인데 밴드 '봄여름가을겨울'과 7집 앨범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의 리마스터링 앨범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2002년 발표된 후 386세대 남성들의 송가처럼 불렸다. 타계한 김현식의 밴드로 출발한 봄여름가을겨울은 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 장기호(베이스), 유재하(키보드)를 라인업으로 1985년 결성된다. 유재하가 빠진 자리에 전성식이 들어오면서 발표한 '김현식3'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3위에 오를 정도로 빼어난 음반인데 특히 기존의 한국대중음악에서 찾기 어려웠던 퓨전 재즈의 요소를 담고 있다.
이후 봄여름가을겨울은 김현식과의 활동을 뒤로하고 두 팀으로 나뉜다. 장기호와 전성식은 '빛과 소금'을 만들고 김종진과 전태관은 '봄여름가을겨울'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김종진의 말에 따르면 김현식에 대한 존경으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었다고 한다.
두 사람으로 라인업을 갖춘 봄여름가을겨울은 1988년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공개한다. 송홍섭(베이스), 한충완(피아노), 황수권(키보드) 같은 당대 최고의 연주인들이 참여한 데뷔 앨범은 밴드의 이름처럼 4개의 콘셉트로 구성되어 있고 사용한 악기들을 봐도 실험적인 이미지가 풀풀 풍긴다.
아마도 1988년 당시 음반을 구입하고 턴테이블에 걸었던 대중들은 당혹스런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앨범의 시작인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부터 가요가 아닌 연주곡으로 시작하더니 두세 곡 건너 한 곡은 연주곡이었으니 김현식의 앨범을 상상했던 사람들에겐 어쩌면 실망을 줬을 수도 있겠다. 뭐, 실험이란 게 당대에는 환영받기 어려우니까 그 정도 반응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라디오에서 앨범에 수록된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가을)',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같은 곡들이 서서히 나오게 되고 수록된 연주곡들이 배경음악 등으로 사용되면서 봄여름가을겨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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