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에는 격동의 중국 역사를 가로지르며 난세를 헤쳐나간 수많은 영웅호걸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기' 연구자인 김영수의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를 읽으며 사기 속에서 삶의 길을 찾아본다.
진나라 말기 진시황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천하가 혼란에 빠졌을 때, 한 고조 유방을 보좌하여 항우를 격파하고 한 왕조를 세운 공신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 공신의 말로는 결코 좋지 않았다. 한신, 팽월과 같은 무장들은 모반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고, 소하는 재상에 임명되었으나 이내 유방의 의심을 받아 옥에 갇히고 만다. 유방을 도와 전략을 수립하는 등 많은 공을 세운 장량은 천하가 통일되고 평화가 찾아오자 산속으로 들어가 더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전국시대 월나라의 재상 범려와 함께 때를 알아 현명하게 은퇴할 줄 알았던 인물의 대표로 거론된다.
이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이 진평이다. 그는 왕조가 건립된 후 24년 동안 줄곧 정치 일선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선견지명과 독특한 균형감각을 지녀 정치적 속박과 시대의 풍랑을 헤쳐나간 정치가였다. 하지만 진평 역시 주변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모함에 시달려야 했다.
잘 참던 유방도 결국 진평을 추천한 위무기를 나무라며 당사자를 소환해 직접 소문의 진상을 확인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진평은 침묵으로 뜬소문을 잠재웠고, 능력과 행실을 확실하게 구분하여 유방에게 해명하고 그의 신임을 재확인시켰다. 진평은 끊임없는 노력과 준비를 통해 적절한 정책을 마련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순간을 잘 가늠하여 성공적으로 이끌어갔다. 앞날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과 더 큰 이익을 위해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진평 덕분에 초기 불안했던 한나라 정권은 비로소 안정을 찾고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기틀을 잡을 수 있었다.
'오월동주'란 고사성어로 잘 알려진 오나라와 월나라의 관계는 우리에게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복수의 화신 오자서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인물이다.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 평왕에게 살해되고 자신은 지명수배된 상태에서 오자서는 우여곡절 끝에 오나라로 들어온다. 그는 얼굴에 더러운 오물을 잔뜩 발라 미치광이로 분장한 채 큰길에서 피리를 불며 동냥을 하고 다녔다. 10척 거구에 번득이는 눈빛을 가진 오자서는 이후 오나라가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자서는 죽은 평왕의 시체를 관에서 끄집어내 300번 채찍질한 '굴묘편시'와 해는 지고 갈 길이 멀다는 뜻의 '일모도원'이란 유명한 고사성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편 월나라 구천은 쓰디쓴 쓸개를 혀로 핥고 장작더미 위에 누워 고통을 참으며 끝내 목표한 바를 이룬다는 '와신상담'의 주인공이다. 10년 동안 백성의 마음을 한데 모으고, 인구를 늘리며 군사력을 키웠다. 오'월은 거의 반세기 동안 계속해서 싸움을 벌였다. 이 두 나라의 싸움은 순간순간 다가오는 위기상황과 그것을 헤쳐나가는 풍운아들의 활약상이 눈길을 끈다. 권력층 내부의 알력, 시기, 모함 등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형세, 치욕을 참고 재기에 성공하는 인간승리, 가장 영화로운 순간에 물러날 줄 아는 지혜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왕 합려의 뒤를 이은 부차에게 죽임을 당할 때 오자서가 남기는 유언은 섬뜩하다.
자신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관의 재료로 삼고, 눈알을 도려내어 오나라 동문 위에 걸어 월나라 군사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가 남긴 저주는 현실이 되어 결국 오나라는 멸망하기에 이른다. 이는 오자서의 저주가 실현됐다기보다는, 간신의 잘못된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부차의 모습을 통해 어두워져만 가는 오나라의 미래를 보았던 오자서의 통찰력이 그대로 들어맞은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방대한 분량의 '사기'에서 저자가 일부를 발췌하여 해설을 덧붙인 이 책에서 독자들은 자신이 직면해 있는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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