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재 서병오(1862~1936) 기념사업회가 26일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석재 기념사업회는 석재의 업적을 전승하고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돼 범시민운동으로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석재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석재 서병오 서예상을 제정하고 석재 서병오 평전 및 시서화집 발간, 석재 서병오 시서화의 학술적 연구와 포럼 개최, 휘호 대회 및 한시 백일장 개최, 석재 서병오 서예기념관 건립을 주요 사업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석재는 대구 중구 동성로 3가 8번지에서 태어났으며 1922년 교남시서화회를 창립해 전국의 서예가들이 대구를 찾아오는 등 대구가 서예의 중심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수차례 위촉되었으며 많은 서예가를 배출해 서예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명사들과 교류했다.
대원군은 석재를 두고 '압록강 동쪽에서는 처음 난 인재'라고 극찬했고, 중국의 대표 서화가 포화는 '조선의 두보요, 이백이다'라고 극찬했다. 석재가 서거하자 일본 오사카신문은 "반도가 낳은 위재(偉才)가 서거했다"고 애도했고 일본 정계의 거물인 도야마 미쓰루 역시 "조선의 꽃이 떨어졌다"고 표현할 정도로 석재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명성을 떨쳤다.
한편 이날 창립총회에서 이의익 대구예술대 총장이 석재 서병오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선임돼 앞으로 석재 기념사업회를 이끌어나가기로 했다.
최세정기자 사진'김태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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