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합니다. 물어봐도 알아야 가르쳐 주죠. 못 배운 할미 탓입니다."
27일 오후 대구 동구 신암동 아양중학교 교장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8명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임흥준 교장이 "어르신, 손주들이 잘못해서 모신 것이 아니라 손주 녀석들 키우면서 힘드셨던 점을 들어보고 싶어서 모셨습니다"라고 말하자 그제야 할머니'할아버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날 아양중은 '2012 조손가정 할아버지 할머니 학교 방문의 날' 행사를 열어 교내 조손가정 할머니, 할아버지 8명을 초청했다. 조손가정의 어려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 학교 조손가정 학생은 전체 450명 중 20명으로, 100명 중 4명이 조손가정인 셈이다.
행사는 초청된 조부모들이 학생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학생들의 활동 모습과 수업을 참관한 후 선생님들과 함께 간담회를 가지는 순으로 진행됐다.
간담회에서 조부모들이 꼽은 조손가정의 가장 큰 어려운 점은 '교육'이었다. 손주 3명을 남편과 함께 키우고 있는 최윤옥(60'여) 씨는 "많이 배우질 못해서 아이들이 모르는 것을 내가 가르쳐 줄 수도 없고 주변에 물어볼 사람도 없어 궁금한 점을 물어볼 때마다 미안함이 밀려온다"며 말끝을 흐렸다. 최 씨의 말이 끝나자 곳곳에서 비슷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할머니는 "숙제를 했다고 거짓말을 해도 내용을 몰라 확인할 길이 없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조손가정 대부분이 교육의 어려움을 겪지만 대책은 빈약한 실정이다. 조손과정임을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손가정은 65세 이상인 조부모와 만 18세 이하인 손자녀로 구성된 가정을 일컫는다. 대구시는 '조손가정 희망 사다리 사업'을 통해 조손가정에게 학습과 가사 지원, 주거환경 개선을 돕고 있다. 하지만 실제 조손가정은 부모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떨어져 살아 조부모들이 손자녀를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대상에서 제외된다.
아양중 김보람 교육복지사는 "교육복지사업비와 방과후 자유수강권과 같은 정부 지원은 법적으로 증명된 저소득층이나 한 부모 가정에만 제공된다"며 "대다수 조손가정은 아이들이 부모와는 떨어져 살아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도 법적으로는 부모와 같이 사는 것으로 되어 있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세대 차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조모(79) 씨는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이 스마트폰만 가지고 놀고, 사춘기라 그런지 대화를 하려 하지 않는다"며 "잘못한 부분을 혼내면 잔소리처럼 느껴 아이가 엇나갈까 봐 계속 야단을 치지도 못하겠다"고 걱정했다.
임흥준 교장은 "조손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이지만 세대 차이에서 오는 소통의 어려움도 그에 못지않다"며 "앞으로 매 학기마다 2번씩 이런 모임을 가져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알고 풀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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