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김재훈 지음/ 아트북스 펴냄
'20세기 요정'으로 세계인의 공인을 받았던 인물로 오드리 헵번과 메릴린 먼로를 꼽을 수 있다. 두 사람은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남녀노소 모두의 찬사와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다. 헵번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상큼한 여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이후 줄곧 좋은 이미지를 유지했다. 헵번이 만인의 사랑을 받았다면, 먼로는 산업화와 욕망의 시대에 만인의 갈채를 받았던 여인이다. 갈채를 얻는 대가로 그녀는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함께 견뎌야 했다. 상업문화의 외줄 위에 자신의 육체를 얹어놓고 아슬아슬하게 걸었으며, 결국 상업문화의 열기 속에서 산화했다.
오드리 헵번의 이미지가 청순, 순수, 지성미, 우아, 정숙이라면, 메릴린 먼로는 열정, 관능, 육체, 도발, 염문, 에로틱, 섹시였다. 그러나 실제로 메릴린 먼로는 지적인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서른여섯 해의 짧은 인생에 남긴 것이라고는 몇 편의 호들갑스러운 영화와 도발적인 루머뿐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진짜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고, 아마도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것이야말로 상업문화의 민얼굴인지도 모른다.
20세기 퍼스트레이디 패션을 이끌었던 두 여인을 꼽으라면 미국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와 영국의 다이애나 스펜서를 들 수 있겠다. 재클린은 미합중국의 퍼스트레이디였으며, 남편 케네디 사망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선박왕의 아내로 살았다. 두 남편과 살았던 그녀는 자기가 선택한 인생을 잘 포장해서 대중의 흠모를 받았다. 산뜻한 느낌과 절제된 품격으로 사람들의 호감을 얻었던 그녀의 패션을 '재키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영국의 다이애나 스펜서. 현대판 왕실의 온갖 허례와 구습을 거부했으며 끝내는 로열패밀리를 박차고 나와 짧지만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간 여인이었다. 그녀는 왕가를 대하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고자 했다. 다이애나의 화려한 옷과 장식은 단지 허영이 아닌 다양성과 자유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 '라이벌'은 20세기와 21세기 문화영웅들(사람뿐만 아니라 사물도 포함)을 통해 오늘날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어떤 창조적인 힘으로 형성되었는지 살펴보는 책이다. 67쌍의 라이벌이 등장하며, 이들을 통해서 동시대 문화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67쌍이 각자 상대를 의식하며 경쟁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20세기와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각각의 인물을 비교하면서 문화적 자생력을 키워왔다. 지은이 김재훈은 바로 이런 점을 포착해 20세기에 나왔던 의상, 물건, 캐리커처, 순수예술, 대중문화, 클래식, 인물, 사물 등을 둘씩 짝을 지어 각각의 특성과 차이점을 부각시켜 보여주는 '라이벌' 형식을 취하고 있다. 책은 대상의 특징을 극대화해 표현한 그림과 짧은 글을 통해 각각의 인물과 사물들이 가진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드러낸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20, 21세기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구조가 특징이다.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메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아이콘'이 된 인물들을 다룬다. 2장에서는 아르누보의 두 거장 알폰스 무하와 오브리 비어즐리처럼 디자인과 시각예술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 3장에서는 상품 디자인과 패션 디자인을 다룬다. 4장에서는 SNS, 잡지, 영화 등 대중매체를 다룬다. 페이스 북과 트위터가 한 쌍의 라이벌로 등장하고, 한국의 잡지 '샘터'와 '뿌리 깊은 나무'가 쌍을 이룬다. 5장에서는 클래식이 주인공이다. 카라얀과 클라이버, 오르먼디와 라이너 등 쟁쟁한 지휘자들과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 등 프리마돈나들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고 보여주고, 작품으로 '카르멘'과 '마농레스코'의 공통점과 차이점, 오페라 '나비부인'과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비교한다. 주제별로 만화와 짧은 글로 쉽게 사회상을 설명하고 있다. 흥미롭고도 유익한 책이다. 319쪽, 1만7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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