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전국민이 찾는 정선 대표 웰빙 음식…정선 곤드레나물밥

제대로 못먹던 시절 가슴 시린 추억이 되살린 강원도의 맛

'나비 없는 강산에 꽃은 피어 뭣하며/ 당신 없는 요세상에 단장하여 뭣하리/ 부모 동기 이별할 때 눈물이 짤금 나더니/ 그대 당신을 이별하자니 하늘이 팽팽 돈다/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그 옛날, 첩첩산중 강원도 정선의 깊은 산골엔 먹을 것이 귀했다. 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화전민들은 봄만 되면 양식이 떨어져 강냉이와 삶은 감자로 근근이 끼니를 이어갔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면 곤드레나물을 뜯어다 삶았다. 이른 봄이면 산골 남정네들은 양식을 구하러 큰 고을로 떠나야 했다. 산골 오두막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애태우던 정선 아낙네들의 그 기막히던 심정은 정선아라리에 스며들어 오늘에 이른다.

◆곤드레나물은 정선아라리의 애절한 음률

그 화전민들의 곤드레나물이 요즘 강원도 정선에서 대표적인 웰빙 음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정선에 들어오는 그 누구든 곤드레나물밥 안 먹어 보고 떠나는 이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인기를 누리게 됐을까? 현지 여론은 곤드레나물이 정선 지역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강원랜드를 능가한다고 한다. 이미 관광상품으로 등극한 지도 한참이나 됐다.

곰취, 곤달비, 명이나물 등 외지인들에게는 낯선 이름도 적지 않을 정도로 강원도산 산나물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곤드레나물은 정선의 대표적인 산나물이다. 참나물처럼 그리 대단한 향도 없는데 왜 대표적인 산나물일까?

곤드레나물은 해발 700m 이상의 청정한 고산지대에서만 자란다. 강원도 정선과 평창 일원에서는 흔한 산나물. 이 곤드레나물은 밥반찬으로 쓰인 여느 산나물과는 달리 춘궁기 화전민들의 밥 대신 주식으로 쓰인 게 특이하다. 향이 강하지 않아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웰빙 분위기를 타고 인기가 치솟자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나서 곤드레나물의 약성도 분석해 놨다.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에 좋고 지혈작용을 하며 특히 비타민C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춘궁기에 산자락마다 흐드러지게 돋아난 곤드레나물을 뜯어 밥을 대신해온 화전민들은 이 풍부한 영양분 덕분에 쌓인 피로를 해소하고 졸음이 몰려 올 정도로 포만감을 느꼈던 것일까? 정선아리랑의 애절한 음률과도 이어지는 곤드레나물은 은은하고 튀지 않는 강원도 정선의 고유한 분위기와도 어울리며, 한국인이면 누구에게나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추억의 입맛을 느끼게 해준다. 조선 초기 강원도 산속으로 들어간 생육신들도 바로 곤드레나물밥을 주식으로 삼아 은둔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정선에서 전해지고 있다.

◆곤드레나물밥의 원조 동박골 식당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남안동IC에서 내려 봉화와 태백시를 거쳐 정선에 이르는 길은 해발 1천여m의 산자락 길이다. 이 원시림 같은 산림 속 드라이브 코스는 봉화에서 태백, 정선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마치 걸어서 깊은 산중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천만년 이력을 지닌 깊은 산속은 맑은 바람에 갓 헹궈낸 듯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속에 찌든 사람들을 압도하며 다가서는 강원도는 청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안개가 낀 듯 희뿌연 솔 숲 사이로 한줄기 산바람이 불어오자 차 안은 금세 솔향기가 가득해진다.

정선읍내에 들어서면 시외버스터미널을 가기 전 정선 제1교를 건너자마자 길 양쪽에 줄지어 늘어선 곤드레나물밥 전문 식당들이 길손을 맞는다. 정선 제1교에서 얼마 되지 않는 길 우측에 곤드레나물의 역사가 시작된 동박골 식당(033-563-2211)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서들 와요. 시장하시지요? 여기가 정선에서 제일 유명한 곤드레밥집이래요."

주인 이금자 씨가 나와 반긴다.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가 넘어 조금 한가하겠거니 생각했지만 식당 문을 들어서자 단체로 온 손님들로 가득하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호남 사투리가 섞여 나온다. 이 씨는 토'일요일과 정선장날(2'7일)에는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편이고, 연중에는 5월 한 달과 8월부터 11월 사이는 손님이 많은 성수기라고 한다.

이 씨가 말해준 곤드레밥 짓는 법은 이렇다. 먼저 돌솥에다 깨끗이 씻은 찹쌀과 멥쌀을 함께 넣고 적당하게 물을 부은 다음 그 위에 곤드레나물을 얹는다. 그 후 참깨를 뿌리고 뚜껑을 덮은 후 약한 불로 밥을 짓는다. 밥 뜸이 들여질 동안 곤드레나물도 잘 쪄진다고 한다.

이렇게 지은 밥은 곤드레나물과 섞어 떠내서 큰 사발에 옮겨내 양념간장 한 숟가락 넣고 비벼 먹는다. 조선간장에 왜간장을 적당히 섞은 양념간장은 곤드레나물밥에 제격이다. 곤드레 향을 가장 잘 살려주기에 그렇다. 식성에 맞게 고추장과 양파, 호박을 넣고 지져낸 막장이 따로 나온다. 이 집에서 쓰는 모든 장은 강원도산 콩으로만 담근다. 그러니 강원도의 구수함이 그저 배어날 수밖에. 곤드레나물밥에 딸린 반찬은 무려 12가지다. 열무김치와 오이무침, 콩나물파무침, 애호박볶음, 곰치 장아찌, 산나물도토리묵 무침, 곤드레나물 전, 오징어식혜, 도라지초무침, 납딱썰기 깍두기, 그리고 된장찌개다. 거기에다 막장으로 만든 쌈장은 볶음장으로, 거무튀튀하지만 맛은 일품이다. 모두가 강원도식이다. 돌솥에 물을 부어 구수한 숭늉을 만들어 놓고 먼저 곤드레전 한쪽에 곤드레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켜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드디어 양념간장에 잘 비벼진 곤드레밥 한 숟갈이 입안으로 들어간다. 은은한 산나물 향에다 부드럽고 미끈하게 씹히는 곤드레 맛이 밥알과 어우러져 이채롭다. 전혀 질기지 않다. 마치 부드러운 미역을 먹는 것처럼 뒷맛이 개운하다. 봄철 춘궁기마다 이 곤드레밥을 무던히도 먹었을 것이리라. 곤드레밥 숟가락 숟가락마다 그 옛날 강원도 산골 화전민 아낙네들의 애환이 떠오른다. 우리네 고향 어머니처럼….

◆곤드레나물이 이끄는 정선 지역경제

정작 정선 토박이들은 보릿고개의 아픈 추억이 있어서인지 잘 먹지 않는단다. 그럼에도 정선읍내 식당마다 곤드레나물밥을 팔지 않는 곳이 없다. 누구나 쉽게 지을 수 있고 어디서든 손님이 찾으니 갈빗집에서도, 자장면집에서도 곤드레나물밥을 팔고 있다.

산나물로 유명한 정선에서 동박골 식당에 붙어 있어 곤드레나물밥을 먹고 자연스레 강원도 산골의 장터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곤드레나물을 비롯해 가지각색 산나물을 한 아름 사갈 수 있어서 더없이 좋다. 그렇다. 정선은 가히 '곤드레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주인 이 씨는 곤드레나물이 끼치는 정선읍내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상당하다고 했다. 곤드레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전국에서 장사꾼들이 몰려 곤드레나물을 사간다. 폐광지역으로 뭐하나 볼 것 없는 정선으로 관광객을 데려오는 데는 카지노 강원랜드보다도 곤드레나물이 더 한몫을 하고 있단다.

예부터 강원도 산골 도시인 정선은 논이 적었다. 대부분 화전민들이 개간해 놓은 산비탈 밭일 뿐이다. 그러니 먹을 게 별로 없는 건 당연지사. 봄만 되면 산에서 나는 나물에 기대어 살아올밖에…. 그러니 나물에다 메밀이나 옥수수 가루를 더해 멀겋게 끓인 죽이 일상 끼니였던 것. 이 같은 형편은 1970년대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정선 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 나물밭이었다. 곤드레를 비롯해 미역취, 개미취, 머위, 고비, 나물취, 둥굴레, 참나물, 중댕가리, 분주나물, 삽취, 왜수리, 곰취. 이 중에 곤드레나물이 정선 사람들에게는 가장 귀중했다. 동박골집 이금자 씨가 말하는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산나물이 몸에 좋다고 하지만 맵거나 톡 쏘는 등 향이 강해서 가끔씩은 먹을 만하나, 끼니마다 먹을 수는 없잖아요. 향이 너무 강하니 삶은 뒤 물에 담가 우려내서 먹지요. 그런데 이 곤드레는 향이 강하지 않고 줄기도 부드러워 삶아 우려내지 않고 삼시 세 끼 몇 달을 먹어도 탈이 나거나 질리는 일이 없지요."

정선 사람들은 곤드레를 나물이 아니라 거의 밥처럼 여겼다. 그래서 이 곤드레라는 이름에는 이 나물로 보릿고개를 버티며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소쿠리에 가득 담긴 삶은 곤드레나물 더미에서는 비를 흠뻑 맞은 깊은 산 속 소나무 향기가 묻어 나온다. 이 알 듯 모를 듯한 은은한 향기는 오래전 산골 마을에 두고 온 고향집 향수를 자극한다. 이게 곤드레나물밥에 갈채를 보내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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