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갑 지음/깊은 솔 펴냄
생존율 9% 중병, 생사의 문턱에서 힘들게 걸어나왔던 매일신문 편집기자가 건강을 되찾게 된 후 쾌유의 길을 가르쳐 준 산에 대한 고마움을 책으로 선물했다. 저자는 산을 통해 온몸의 기능을 정상화시키고 웬만한 산악인 못지않은 체력을 길렀다. 전국 100대 명산을 모두 찾았고, 이 기록을 매일신문 주간지인 주간매일의 '산사람 산사랑'이란 코너를 통해 연재했다. 이 100대 명산 완등 기록은 저자에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특별상의 기쁨도 안겨줬다. 바로 그 기록이 책으로 편찬된 것이다.
100대 명산 등정에 대한 기록이며, 100대 명산에 숨겨져 있는 에피소드를 찾아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정의를 훔친 임꺽정, 관군을 피해 숨어든 곳-파주 감악산, 원효대사'요석공주 애틋한 사랑 서린 경기 북부의 명산-동두천 소요산. 정통성 콤플렉스 시달린 세조 넉넉히 품어준 산-평창 오대산. '부안3절' 매창과 유희경의 로맨스 깃든 산-부안 변산. '까칠한 지식인' 최치원이 은둔지로 택한 곳-합천 남산 제일봉 등 제목 하나하나가 꼭 산을 오르지 않고도 그 산을 느낄 수 있다.
2009년 3월 사천 와룡산부터 2012년 5월 포천 명성산까지 3년 3개월 동안 취재를 위한 총 연장거리만도 1만㎞가 넘는다. 기자가 명산을 하나씩 오르면서 몸소 느끼고 숨겨진 자료를 찾아 정리했다. 그리고 100대 명산을 모두 올랐을 때는 이미 산악인이었다.
이 책은 풍부한 산악상식을 담고 있고, 에세이 형식으로 써내려간 다양한 숨은 이야기는 재미는 물론 사료적 가치마저 품고 있다. 우리나라 명산에 숨겨져 있는 에피소드를 알고 산을 오른다면 등산의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전국 유명산들의 사계와 역사,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빼곡하다.
산은 역사의 현장성에 충실하다. 서가(書架)의 역사가 팩트고 역사의 정형이라면 산은 그 역사의 공간적 배경이고 무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산 아래 반가(班家), 민가(民家), 궁궐에서도 역사는 존재했지만 산처럼 그 역사가 사실적으로 펼쳐지는 곳도 드물다.
팔공산엔 견훤에게 쫓기던 왕건의 도주로를 따라 그 지명이 붙었고, 경기도의 산엔 왕건에게 패한 궁예의 패주로를 따라 산 이름과 지명이 유래한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중부내륙의 산들엔 비운의 마의태자와 홍건적에 쫓긴 공민왕의 피란 행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00대 명산 후반부에는 미답(未踏)의 산들이 경기, 강원도 등 오지에 집중돼 있었는데다 너무 벽지라 힘이 많이 들었다. 저체온증으로 생명의 위협마저 느낀 아찔한 경험도 이 책에 소개돼 있다. 주말엔 토요일 이 산, 일요일 저 산을 가는 '더블헤더'를 뛰기도 했다. 지인들과 야영을 하고 찜질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가평 명지산과 삼악산, 포천 명성성과 소요산, 홍성 용봉산과 덕숭산, 청양 칠갑산과 오서산이 그 결과물들이다.
저자는 "생사의 기로에서 다행히 회복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 호전의 과정에는 산이 있었다"며 "암 환자의 세상에 대한 보은, 다시 말해 저를 치료로 이끌어준 산이 좋았고 세상에 진 빚도 갚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447쪽, 1만7천500원.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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