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일기] 철이 이야기

저의 어릴 때 장래 희망은 교사였습니다. 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문학을 전공한 멋진 국어 교사였지요. 그런데 제가 대학에 들어갈 때 사범대에 의무적으로 남학생을 30% 뽑아주던 법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의고사를 치면 남학생 12명 모집에 6, 7등 하던 저는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에게 밀려 전체 40명 모집에 37, 38등을 하는 겁니다. 목표가 사라지니 공부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 제가 존경하던 국어 선생님께서 교육대학교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철없는(?) 제 성격엔 초교 교사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교육대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한 다음 임용고시를 치고, 대구에 발령받게 됐습니다. 출산 휴가를 내신 선생님 대신 맡게 된 3학년 아이들이 제 첫 제자입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늘 복도에서 한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뛰어다니는 남학생 하나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 녀석을 붙잡아 두 손을 잡고 '복도에서는 뛰어다니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제 손을 뿌리치고는 제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더니 다시 행복한 표정으로 뛰어서 달아났습니다. 허허 참…. 그 친구가 특수교육 대상 학생인 철이(가명)라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무언지 모를 끌림을 느꼈습니다.

그 끌림이 무언지 확인해 보고 싶은 저는 그 이듬해 4학년 담임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초임 교사의 용기(?)로 철이까지 맡겠다고 했습니다. 여러 선생님의 배려로 철이는 우리 반이 됐습니다. 얼굴이 뽀얀 철이는 늘 여기저기 뛰어 다니는 사랑스런 남학생이었습니다.

철이는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사랑을 온몸에 받고 있었고, 아직 꼬맹이 같은 우리 반 친구들도 철이를 무척 아꼈습니다. 아직 자기 앞가림도 힘든 아이들이 무언가 부족한 친구를 보살피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습니다.

철이가 있어 힘든 것도 많았지만 아이들의 사랑에 감동한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 이듬해 5학년 담임을 자원했습니다. 그리고 철이는 우리 반이 되었습니다. 1년 후 저는 6학년 담임을 지원했고 저는 제 손으로 철이에게 졸업장을 줄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이는 계속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지만, 철이 어머니와 저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3년 6개월을 함께한 아이들은 6학년이 되니 이제 제 눈빛만 봐도 제 기분을 알게 됐습니다. 저 역시 우리 반 아이들은 물론 200여 명의 6학년 모든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게 됐습니다. 3년을 내리 담임을 맡은 아이가 철이 말고 보통 아이 두 명이 더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종강하고 나면 열심히 공부한 자기에게 맥주를 사 달라고 제게 전화하는 새내기 대학생이 됐습니다.

철이와 헤어지고, 전 나름 저와 약속을 하나 하게 됩니다. '내가 맡은 학년에 특수반 친구가 있으면 내가 담임을 맡자.' 그리고 지금 제 앞엔 일곱 번째 철이가 앉아있습니다.

김성기 복현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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