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아들, 손 이병이 첫 휴가를 나왔습니다. 입대 전 잘 다녀오라며 환송해 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 데 그새 반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는 나를 보자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거수경례를 합니다.
"충성, 육군 손 이병 대령님께 인사 드립니다."
아주 늠름해 보입니다. 군복이 잘 어울리기도 하거니와 앉고 서는 자세에 절도가 배어 있습니다. 나는 칭찬 대신 아예 장기 복무를 하라며 그의 믿음직한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손 이병의 입대는 좀 특별합니다. 그는 호주 영주권자이니까요. 병무청 관계자는 손 이병에게 입대는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라고 하였습니다. 굳이 군복무를 하지 않아도 법적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손 이병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생각보다 오히려 더 단호하게 입대를 희망하였습니다. 군사제도와 무기체계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거니와 그 스스로 강한 남자를 희망한 까닭인가 봅니다. 부모들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것이지요.
휴가를 즐기는 손 이병은 할 얘기가 많은가 봅니다. 앞에 둔 찻잔이 식는 줄도 모르고 이런저런 군대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그에게는 모두 특별하고도 낯선 경험들이었을 테니까요. 자기보다 기껏 한 계급 위인 최 일병의 위엄(?)에 주눅 든 이야기 등 소소한 내무반 생활의 에피소드를 실감 나게 전하면서 족구선수가 되었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군율에 따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점차 절제되어가는 자기 자신이 신기했답니다. 그는 절제와 복종이라는 고유한 과목을 이수하는 대학생이 된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일전에 제주도에서 교육행정가인 K박사와 자리를 같이하였습니다. 그는 마침 동행한 내 아들과도 한 차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남자가 되는 자격이 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좌중의 누군가가 '이경규'라고 하여 한바탕 웃기도 하였습니다만 물론 농담이지요.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남자의 자격'을 진행했던 개그맨 이경규 씨를 떠올린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군대를 갖다 와야 진짜 남자가 된다' '인내와 고생을 체감해보아야 한다', 또 '여자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등등의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K박사는 3가지를 경험하는 것이 그 지름길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먼저 옥살이, 두 번째는 수도 생활, 그리고 세 번째가 군대 생활이었습니다. 그곳은 모두 타율의 세계요, 인내와 절제와 복종을 요구하는 규범이 있는 영역이니 이를 인내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남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요지였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드러난 말처럼 옥살이를 미화하거나 승려가 되기를 권장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그는 복종할 줄 알 때, 또한 복종케 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지도력의 요체는 구성원을 조직 목표에 복종케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 방법이 민주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선에서 말이지요. 죽음으로써 필승을 목표로 하는 군대조직은 다른 조직과 달리 조직 내 질서와 절대복종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들은 2년 채 되지 않는 기간의 군대생활을 통해 초임병에서 선임병이 되기까지 그리 녹록지 않은 일들을 몸으로 부딪치면서 해결해 나갑니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과정입니다. 선철이 하나의 이름을 가진 무쇠로 거듭나기 위한 벼림이 있듯이 말이지요.
생활형편이 나아지고 출산율이 줄어들면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자녀를 과보호합니다. 지나치게 배가 부르고 몸이 따뜻한 생활에 젖어지다 보니 자기절제의 상한선이 낮아진 것이지요. 15세기 일본의 무사들이 자녀교육의 덕목을 '삼분한 삼분기'(三分寒 三分飢)에 두었다 함은 곰곰 음미해 볼만합니다. 조금 춥고 조금 배고픈 환경 속에서 성장하여야 인내와 절제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는 의미이지요. 어려운 상황을 인내하지 못하고 자신을 제어할 줄 모르는 무절제함 속에서 어떻게 지도자의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을까요.
나는 손 이병의 선택을 칭찬합니다. 타율이라는 호소 속에서 스스로 영법을 익히고 벼리어나가는 손 이병이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이미 일병으로 진급되어 국군의 날을 맞는 손 일병 파이팅!
김정식 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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