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에 곽한이라는 총각이 견우(牽牛)의 절친이자 천상의 선녀인 직녀(織女)와 잠시 사귐을 가졌다. 그녀의 옷은 바느질한 자국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곽한의 감탄처럼 천의무봉(天衣無縫)은 '하늘의 의복은 원래 봉제를 하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됐다. 이는 태평광기에 수록된 고사다.
천의무봉은 미적 완벽함이나 기술의 극치, 사물의 무결점 등을 일컫는 의미로 고전적 시문에 자주 회자되고 있다. 이의 복식재료는 예로부터 숱한 우여곡절과 천신만고가 있어야만 습득할 수 있는 지고지순의 경지에 다름 아니다.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최초의 옷도 무봉제 제품이기도 하다.
대구는 삼베와 비단, 무명, 순모 등 자연섬유류를 비롯해 나일론(나이롱), 폴리, 벨벳(비로도) 등 인조 섬유류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섬유산업의 중심지였다.
대구 섬유는 우리나라 의생활문화사에 몇 차례 혁명적 변화를 이끌기도 했고 세계 복식문화 창출에도 기축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유구한 전통을 끈끈하게 이어 오고 있다.
대구 섬유는 1970년대 이전에는 의류용 섬유소재 중심의 내수기반으로 내공을 다진 뒤 1980년대 이후 세계 섬유원단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에다 최근의 이란사태와 인근 국가의 정정불안으로 중동지역으로의 정상적 수출길이 막히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유럽발 경제위기까지 겹쳐 지역 섬유업계의 경영활동도 크게 움츠러들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스럽게나마 최근 들어 느리기는 하지만 미국의 섬유소비 시장이 점차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일말의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또 몇몇 지역 섬유제조업체를 중심으로 내수시장 진출을 위한 브랜드 론칭도 시도되고 있어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역의 토털브랜드인 대구의 쉬메릭과 경북도의 실라리안 등도 신상품 출시와 매장 단장으로 침체된 내수 섬유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무분별한 소비는 곤란하겠지만 지역의 섬유생산 기반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자발적 내수를 유도할 수 있는 동인이 마련돼야 한다.
1900년대 초반 미국의 헨리 포드는 자동차 판매가 부진하자 자사 종업원을 염두에 두고 품질과 가격을 감안한 신상품 출시 전략을 구사해 위기를 극복하고 단숨에 세계적 선두주자로 부상하기도 하였다.
이런 데서 보듯 대구 섬유도 수출길이 정체되어 있을 때 시민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내수가 조금만이라도 받쳐주면 큰 힘이 된다.
물론 이에 앞서 우리가 만드는 섬유제품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섬유상품의 소비자 입장이 되어 자연스럽게 깊은 호감을 가질 수 있을 만큼의 신뢰성 확보와 시대에 부합하는 창의적 선진성이 따라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수요창출력 부진은 무뚝뚝한 고객의 몫이 아니라 시장을 읽어내어야 하는 공급자의 의무이자 숙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간 경제성장의 주춧돌이 되어 온 지역섬유가 또 한 번 새로운 의생활문화 창달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굳게 믿는다.
현재 대구시에는 우리나라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섬유패션과가 있으며 경상북도에는 섬유계가 있다. 그리고 지역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섬유 관련 단체와 지원기관, 교육기관이 있기도 하다.
일선 업계와 관련 기관, 섬유전문가들이 합심해 지혜를 모은다면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좋은 출구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번 가을엔 대구 섬유를 가을빔으로 장만해 보자. 대구의 가을빔으로 빨강 노랑 파랑 찬란히 수 놓인 천의무봉 올레길 한번 걸어보자. 또 대구 패션을 입고 눈부시게 해맑은 가을 햇살과 황금물결 넘실대는 들판 사잇길에서 한껏 멋을 부려보자. 찌든 마음까지 씻기면 더 좋을 터.
시민들의 패션은 도시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바꿀 수 있고 시민 정서까지 변화시키는 작은 단초가 될 수 있다.
박원호/한국섬유개발연구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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