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꽃 팬티 전설-김왕노

꽃 팬티 안에는 꽃이 숨어 있다. 그 꽃을 꼭꼭 숨기고 싶거나 그 꽃을 위로하여 꽃 팬티를 이 땅의 여자들은 즐겨 입는다. 나도 한때 꽃 팬티 안에 숨겨진 꽃의 씨방 안에 살던 꽃씨였다. 그래서 꽃씨를 심던 그날 밤이라는 노래도 있다. 시골 난전이나 도시 화려한 가판대에 꽃 팬티는 있다. 어머니 꽃 팬티 몇 장 사와서 장롱 깊이 꼭꼭 숨긴 것도 꽃 팬티 안의 꽃을 꼭꼭 숨기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꽃 팬티 즐겨 입으시는 것도 때로는 팬티의 그 뭇꽃을 벗겨내면서 당신에게 숨겨둔 꽃, 아버지 눈에 가만히 읽히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남자가 쌍방울표 팬티를 즐겨 입고 쌍방울 달랑거리면서 젊은 수말처럼 뜨거운 입김 내뿜을 때 여자는 꽃 팬티를 소리 없이 내리는 것이다. 꽃 앞에서 수말처럼 히힝거리던 남자는 울음으로 일획을 그으며 여자의 몸을 건너 그믐의 밤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지금도 은근히 인기 좋은 꽃 팬티, 봄 오면 불티나게 팔리기도 하는 꽃 팬티, 꽃 팬티의 전설은 이 땅에 다래로 머루로 해마다 주렁주렁 열리는 것이다.

----------------

야하면서도 야한 것에 머물지 않는 위엄을 갖출 때 시는 예술이 됩니다. 예술이냐 포르노냐 하는 논쟁은 결국 작품에 그런 위엄이 존재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꽃 팬티를 노래한 이 시는 얼마나 야합니까. 그러나 이 속에는 그런 야함을 전혀 야하지 않게 만드는 삶에 대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꽃 팬티 안에 그와 닮은 꽃을 숨길 수밖에 없는 여성의 투명한 부끄러움에 대한 시선 말입니다.

시인·경북대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