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개천절 유감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 초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개천절 노래이다. 불러본 적이 참으로 아득하다.

10월 3일. 엄연한 대한민국 국경일로 지정된 이 개천절에 대한 의미를 오늘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남북을 통틀어 한민족이라면 국조(國祖)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고조선을 건국함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것은 알고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념적인 분화에다 사회의 다원화와 세계화 그리고 서구 중심주의 같은 탈민족적 사조의 흐름에 따라 개천절에 대한 인식 또한 이완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일부 종교에서는 단군신화와 단군 숭배를 민족 정체성과 동질성에 관련된 상징 기제가 아닌 종교 차원의 우상 숭배로 여겨 노골적으로 배척해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한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은 이와 관련해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기고 있다. 여기서 '손님'이란 어느 날 우리네 삶에 불쑥 찾아온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를 말한다. 그리고 잘못 이식된 사상이 빚어낸 주민 간의 학살극을 배경으로 민족의 슬픔을 대변했다. 종교에 대한 맹신이 어떤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사상과 지식의 섣부른 습득이 얼마나 엉뚱한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웅변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 어떤 민족이건 건국신화가 있기 마련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건국이념으로 표방한 단군신화의 의미를 애써 폄하하고 우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극히 배타적인 종교관과 치졸한 사상적 부산물이 아닐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을 위한 사상과 종교가 아니라, 사상과 종교를 위한 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홍익인간의 이념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상과 종교라면 우리에게 달갑지 못한 손님일 수밖에….

개천절은 상해임시정부에 이어 남한은 물론 북한 체제에서도 인정하는 기념일이다. 민족의 탄생과 민족사의 출발을 경축하는 날이다. 시월 상달은 햇곡식으로 제상을 차려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네 고유의 명절이기도 하다.

우리 겨레가 일궈온 눈물겨운 역사와 아름다운 문화를 업신여기고 이단시하는 손님이라면 반갑지 않다. 스스로의 새암과 뿌리를 흘겨보고 손님에게 휘둘리는 겨레라면 개천절이 무슨 소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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